[뉴스파워][태백 기독교 89년 역사와 현황]광산촌의 복음에서 기도와 연합의 성시화로(2026.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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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 기독교 89년 역사와 현황]광산촌의 복음에서 기도와 연합의 성시화로
정종옥 목사 태백시기독교연합회장·장성감리교회 담임목사
기사입력시간 : 2026/08/03 [09:03:00]
정종옥
지난 7월 27일부터 29일까지 열린 '제8회2026태백성시화 여름축제' 둘째날 오후 '태백을 알고 태백을 위해 기도하자'는 취지로 '태알태기 성시포럼'이 열렸다.
![]() ▲ 1937년 설립된 태백 최초의 교회 장성감리교회. 정종옥 목사가 담임목회하고 있다. |
이날 포럼에서 태백 최초의 교회인 장성감리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정종옥 목사(태백시기독교연합회장, 태백성시화운동 대표회장(당연직))이 '태백 기독교의 역사와 현황-광산촌의 복음에서 기도와 연합의 성시화로'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했다. 태백기독교 역사를 정리하여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포럼에서는 태백연동교회 원로목사인 최준만 목사가 '태백시민을 위한 교회의 역할'을 발표했다. 그리고 태백 황지교회가 설립 운영하고 있는 '아이누리장난감도서관'에 대해 이은숙 관장이 발표했다.
다음은 정종옥 목사가 발표한 발표문이다.
![]() ▲ 2026태백성시화 여름축제 성시포럼에서 태백 기독교의 역사에 대해 발표한 정종옥 목사(태백장성감리교회, 태백기독교연합회장) ©뉴스파워 |
1. 광산촌에 뿌려진 복음의 씨앗
태백 기독교의 역사는 석탄을 따라 모여든 사람들의 삶과 함께 시작되었다. 태백산맥을 따라 삼척과 도계를 거쳐 장성으로 이어진 선교의 길에서 1937년 9월 15일 장성감리교회가 설립되었다. 삼척제일교회 홍성주 목사의 전도로 시작된 장성감리교회는 오늘날 태백지역 최초의 교회로 알려져 있다.
초기에는 한 명의 목회자가 삼척·도계·장성을 순회하며 교회와 교인들을 돌보았다. 당시 광산촌 교회는 예배만 드리는 곳이 아니었다. 고향을 떠나 탄광으로 온 사람들이 서로 의지하고, 자녀를 가르치며, 고된 생활 속에서 위로와 희망을 얻는 공동체였다.
광산지역의 인구가 늘어나면서 여러 교회가 세워졌다. 이 과정에서 장성감리교회 안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던 장로교 신앙 배경의 성도들이 자신들의 교단적 전통을 따라 별도의 교회를 세우게 되었다. 이는 장성감리교회 공동체에는 교우들이 갈라지는 매우 깊은 아픔이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광산촌의 급속한 성장 속에서 복음의 지경이 넓어지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그렇게 장성중앙교회가 1948년 8월 15일 설립되었고, 1949년 11월 29일 경안노회에서 설립 허락을 받았다. 장성중앙교회 시무장로였던 박한성 장로는 철암지역에 파송되어 철암교회의 기초를 놓았다.(설립일,1949년11월15일) 철암교회는 전쟁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1951년 북동합숙소에서 예배를 다시 드리며 교회공동체를 이어 갔다.”
황지에서는 신도선 집사를 중심으로 5~6명이 모여 기도한 것이 황지교회의 출발이 되었다. 황지교회는 1951년 3월 29일 설립되어 예배와 교육, 지역봉사의 중심이 되었다. 감리교에서는 1960년 3월 16일 이종학 장로의 가정에서 여섯 명이 첫 예배를 드렸으며, 그해 12월 25일 황지감리교회가 창립되었다. 이 교회는 1979년 황지광염교회로 이름을 바꾸었고, 이후 오늘의 태백목양교회로 이어졌다.
교단은 서로 달랐지만 장성·철암·황지에 세워진 교회들은 광산촌 주민들과 삶을 함께하며 태백 복음화의 기초를 놓았다.
2. 광부의 삶 속으로 들어간 교회
석탄산업이 성장하면서 태백은 국가 산업발전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광부들은 붕락(崩落,갱도붕괴)과 가스폭발, 진폐증과 산업재해의 위험 속에서 일해야 했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교회도 예배당 안에만 머물 수 없었다.
1970년대 사북·고한·황지지역에서 전개된 김요한 주교(성공회태백교회, 대한성공회 대전교구 초대 교구장 주교, the first Bishop of the Diocese of Daejeon)의 산업선교는 광부들의 노동조건과 산업재해, 인간다운 삶의 문제를 교회와 사회에 알렸다. 이후 개신교회가 전개한 복지선교가 김요한 주교의 산업선교를 조직적으로 직접 계승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광산노동자의 삶을 선교의 현장으로 바라보고 그 고통에 응답했다는 점에서는 같은 선교적 흐름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
1984년 2월에는 황지교회 이정규 목사와 지역 교회들이 중심이 되어 ‘기독교광산지역사회개발복지회’를 발족하였다. 초대 총무 윤창현 목사와 제3대 총무 최준만 목사 등을 중심으로 교육과 의료, 진폐환자 지원, 노동상담, 아동과 노인 돌봄사업이 진행되었다.
복지회는 1993년 ‘광산지역복지선교회’로 명칭을 변경했고, 1995년 사회복지법인 태백사회복지회로 통합되어 전문적인 복지사업을 이어 갔다. 이 과정에서 발행된 『막장의 빛』은 별도의 단체가 아니라 광산지역 주민들의 생활과 교회의 사회선교를 기록한 소식지였다. 지금은 당시 광산촌의 현실과 교회의 활동을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3. 폐광 이후에도 지역을 지킨 교회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탄광이 잇달아 문을 닫자 태백은 실업과 인구감소, 지역공동체 해체라는 위기를 맞았다. 이 시기에도 교회와 기독교 기관들은 지역을 떠나지 않고 주민들의 곁을 지켰다.
원기준 목사는 1985년 황지교회 교육전도사와 복지회 실무자로 일하며 광산노동자의 생활과 인권 문제에 참여하였다. 이후 한국기독교장로회 태백선린교회와 교회 부설 태백광산지역연구소를 중심으로 폐광지역 연구와 특별법 제정운동, 철암지역 아동 공부방과 지역재생 활동을 펼쳤다. 태백선린교회는 1985년 광산지역 노동자를 섬기기 위한 총회기념교회로 설립되었으며, 2002년 철암으로 이전하여 지역 주민들과 함께했다.
최준만 목사는 태백연동교회와 광산지역복지선교회, ‘안식의 집’ 등의 사역에 참여하였다. 1996년부터 추진된 태백 해비타트 운동도 집이 필요한 주민들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며 지역의 주거복지에 기여하였다.
강원랜드 개장 이후에는 도박중독과 가정해체, 자살과 빈곤이 새로운 지역문제로 나타났다. 이에 2005년 겨울 태백과 정선지역의 개신교·천주교 성직자들이 ‘도박을 걱정하는 성직자들의 모임’을 조직하였다. 최준만 목사를 비롯한 성직자들은 상담과 보호활동을 전개하고, 도박으로 고통받는 개인과 가정을 위한 사회적 대책을 요청하였다.
황지교회는 폐원한 교회 유치원 건물을 지역사회를 위한 돌봄 공간으로 내놓고, 태백시와 강원랜드의 지원을 받아 2018년 ‘아이누리 장난감도서관’을 개관하였다. 태백지역 1,000여 명의 어머니들이 회원으로 참여하여 자녀들과 함께 이용하고 있으며, 교회와 지자체, 기업이 협력한 아이돌봄의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태백의 교회는 광산이 번성하던 시절에는 광부의 곁에 있었고, 폐광 이후에는 실직자와 주민들의 곁을 지켰다. 오늘날에는 주거복지와 도박중독 예방, 아동 돌봄에 이르기까지 변화하는 지역의 필요에 응답하고 있다. 이것이 태백 기독교 역사에서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모습이다.
4. 기도와 연합의 성시화운동
오늘의 태백 교회는 개별 교회의 사역을 넘어 도시 전체의 회복을 위해 협력하고 있다. 태백시기독교연합회에 속한 62개 교회와 담임목회자들은 각자의 목회 현장에서 밤낮으로 기도하며 예배와 전도, 돌봄과 섬김으로 지역의 영혼들을 보살펴 왔다. 태백의 성시화는 몇몇 지도자나 특정 교회만의 사역이 아니라, 이름 없이 충성해 온 모든 교회와 목회자, 성도들이 함께 이루어 가는 연합의 열매이다.
태백 성시화운동이 뿌리내리는 과정에는 세계성시화운동본부 사무총장 김철영 목사의 헌신이 있었다. 김 목사는 2016년 1월 태백시기독교연합회 신년하례회에서 성시화운동의 비전을 소개하고, 다시 태백을 찾아 설명회를 열어 지역 교회들의 참여를 권면하였다. 이를 계기로 교계의 논의가 구체화되어 그해 5월 1일 태백성시화운동본부가 출범하였다. 이후에도 김 목사는 태백을 세계 성시화의 모범도시로 세우려는 마음으로 기도와 자문, 연대와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태백시성시화운동본부는 출범 이후 기도운동과 복음전도, 성시화 여름축제 등의 사역을 담당해 왔다. 현재 태백시기독교연합회장이 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을 겸임하고 있으므로, 성시화운동본부는 태백시기독교연합회의 공동비전을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연합사역의 구조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대표회장과 본부장, 임원과 실무자들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성시화운동의 주체는 특정 개인이나 교회가 아니라 함께 참여하는 태백의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다.
태백에는 여러 기도의 흐름도 이어지고 있다. 태백성시화 민들레기도팀은 매주 화요일 저녁 지역의 영적 부흥과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태백발전기도회는 교회들을 순회하며 태백의 발전과 시민들의 평안을 위해 기도한다. 예안교회를 중심으로 한 기도운동은 민족복음화와 복음통일, 태백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고 있으며, 예수원도 오랫동안 기도와 노동, 공동체의 삶을 통해 태백의 영적 토양을 일구어 왔다.
이 기도모임들은 운영 방식과 강조점이 서로 다르다. 하나의 조직으로 합치기보다 각자의 특성을 존중하면서 태백을 위한 기도 안에서 서로 연결되는 것이 중요하다. 태백의 62개 교회가 교단과 개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함께 기도하고 섬길 때, 성시화운동은 행사에 머물지 않고 시민의 삶과 도시의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5. 태백 기독교가 이어 갈 길
태백 기독교의 역사는 복음이 전해진 시기, 광산촌에 교회가 세워진 시기, 교회가 광부의 삶 속으로 들어간 시기, 폐광 이후 지역을 지킨 시기, 그리고 기도와 연합으로 도시를 품는 오늘의 시기로 이어져 왔다. 이 시대들은 서로 단절된 것이 아니라 앞선 세대의 수고와 신앙이 다음 세대로 이어진 하나의 역사이다.
앞으로 태백 교회는 교단과 개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다음 세대를 세우고, 인구감소와 고령화, 지역경제의 어려움, 도박중독과 가정해체 등의 문제에 함께 대응해야 한다. 교회와 기관에 흩어져 있는 문서와 사진, 『막장의 빛』과 같은 자료도 수집하고 보존하여 다음 세대에 전해야 한다.
태백의 교회는 석탄산업과 함께 성장했지만 탄광이 문을 닫은 뒤에도 이 도시를 떠나지 않았다. 광부와 가족들의 아픔을 품었고, 폐광의 위기 속에서는 주민들의 곁을 지켰다. 이제 그 믿음의 유산 위에서 태백의 교회들이 더욱 깊이 기도하고 연합해야 한다.
태백 기독교의 역사는 지나간 과거의 기록만이 아니다. 오늘 우리가 이어 가야 할 사명이며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믿음의 유산이다. 태백의 모든 교회가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섬길 때, 이 도시는 복음 안에서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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