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파워]'올림픽 탁구 금메달리스트' 양영자 선교사 “말씀이 나를 살렸어요”(2023.08.01)
페이지 정보

본문
'올림픽 탁구 금메달리스트' 양영자 선교사 “말씀이 나를 살렸어요” | ||||
| 제5회 태백 성시화 여름축제 둘째날 저녁집회에서 간증집회 인도 | ||||
|
제5회 태백 성시화 여름축제 둘째날 저녁집회는 88서울올림픽 여자탁구 복식 금메달리스트 양영자 선교사의 간증집회로 진행됐다.
송인도 목사(철암장로교회, 부회장)의 인도로 진행된 집회는 국회조찬기도회 부회장 김회재 장로(더불어민주당, 사랑의교회)의 영상축사와 이상호 태백시장의 축하메시지로 시작됐다.
김회재 장로는 “코로나19이후 그 어느 때보다 공공성 회복과 하나님 나라 확장의 과제를 안고 있다.”며 “태백성시화운동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선한 영향력을 구현하기를 바란다. 이번 대회가 성령 충만, 은혜 충만, 말씀 충만한 시간이 되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이상호 시장은 “저는 청년시절부터 태백순복음교회 어르신 무료급식 사역에 봉사활동을 했다. 그리고 교회에서 밥도 먹었다.”며 “성시화운동은 전교회가 전복음을 전시민에게 전하는 운동을 통해 한 분의 시민까지 섬기는 모습에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이 시장은 “시청 강당을 종교계에 개방하고, 크리스마스 트리에 십자가를 켜서 12월 한 달 동안 켜놓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교회 주차장 등을 시민을 위해 아낌 없이 내어주시는 교회에 감사를 드린다.”고 밝혔다.
황지교회 김성길 장로는 대표기도를 인도했다. 김 장로는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바로 세워지는 나라가 되게 하소서”라고 간구했다. 또한 “좌와 우와 편으로 갈라진 가운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편어 서게 하소서.”라고 간구했다.
특히 “이 땅의 교회들이 본분을 다할 수 있게 하소서. 또한 태백의 교회들의 예배가 살아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선한 영향력으로 지역을 섬기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다.
이어 순천헵시바워십선교단(단장 유선심 권사)이 안무를 했다. 선교단은 “주여,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와 “찬양 할렐루야‘, ’너는 크게 자유를 외쳐라”는 곡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삶과 거룩한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로 승리를 선포하는 삶을 표현했다.
양영자 선교사는 ‘88서울올림픽 당시의 경기 영상과 인터뷰 영상을 보여 준 후 시편 71편 20절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심한 고난을 보이신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시며 땅 깊은 곳에서 다시 이끌어 올리시리이다.”는 말씀을 봉독한 후 “나를 다시 이끌어 올리신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신앙 간증을 이어갔다.
양 선교사는 초등학교 3학년 때 탁구를 시작했다. 중학교 때 국가대표가 되는 영예로운 선수가 되는 꿈을 꾸게 되었다. 그런데 중학생 때 팔꿈치 의 부상과 간염이라는 암초를 만났다. 정형외과를 갔더니 테니스 앨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 선생이 팔꿈치를 사용하지 않으면 괜찮다고 했다. 그는 어떻게 하면 계속 운동을 할 수 있는가 물었더니 진통제를 맞으면서 하라고 했다. 학교를 갔다 오면서 교회에 들러 팔을 낫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양 선교사는 “진통제를 맞아가면서 국제대회에 나가서 은메달을 따서 언론에서는 탁구 유망자라고 보도를 했는데, 나는 팔이 아파서 19세에 은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어 “그런데 어떤 분으로부터 차범근 선수(축구 국가대표)가 기도원 원장님으로부터 안수기도를 받고 허리 통증을 고침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기도원을 찾아갔다.'며 "원장 목사님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하시는 것을 들으면서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제 인생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했다.”고 밝혔다.
그는 “안수기도를 받고 6년 동안 진통제를 맞아 안 나았던 통증에서 고침을 받았다.”며 “하나님께서는 중학생 때 교회에 들러서 팔을 고쳐달라고 했던 그 기도를 잊지 않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고쳐주셨다.”고 고백했다.
그 때부터 다른 선수들보다 성적이 더 뛰어난 것은 자신이 잘 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가치관이 바뀌게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간염에 걸려 너무 피곤해 도저히 훈련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고,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양 선교사는 “그 몸 상태로는 ‘86 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까지 선수 생활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 힘입어 기도하면서 결국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다.”며 “난공불락이라는 중국팀과 결승에서는 현정화 선수와 함께 경기 전 두 손을 붙잡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시합에 들어갔다.”고 했다.
첫 세트는 21대19로 이겼고, 2세트는 형편 없는 점수차로 졌다. 3세트는 접전이었다. 그런데 중국 선수들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서 결국 21대 10으로 이기고 영광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양 선교사는 ‘인터뷰에서 현정화 선수와 신앙의 힘으로 호흡을 맞춰 이겼다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며 “작은 일이든지 큰일이든지 하나님께 기도하고 맡기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셨다.”고 했다.
8년 간의 국가대표 생활을 포함 열 살 때 시작한 15년 간의 선수 생활을 마치고 은퇴를 했다.
선수 생활에서 은퇴하고 나니 인생이 끝난 것 같은 마음이었다. 그때 하나님 앞에 제2의 진로를 놓고 기도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주위에서는 후배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라고 했다. 그래서 이론과 실기를 갖춘 지도자가 되기 위해 대학원에 입학해 공부하면서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신앙 생활이 안일해지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일은 뒷전에 있었다. 연금을 받고, 아파트를 받았고, 최고 훈장을 받았기에 아무런 부족함이 없이 행복한 삶을 살면 되는 줄 알았다.
마음에 기쁨이 없이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었다. 회의감이 들었다. 그때 63세였던 어머니가 갑자기 간암으로 진단을 받으시고 한 달만에 돌아가셨다.
철야기도까지 하시면서 탁구 선수 생활을 지원해 주신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심한 충격을 받고 무기력증에 빠져들었다.
당시 중앙 일간지에는 “왕년의 탁구 여왕 양영자, 방황의 은둔 생활”, “모친 별세 충격, 우울증” 이라는 기사가 나올 정도였다.
그는 밖에도 나가지 않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싫었다. 해가 지면 밖에 나갔다 들어왔다.
그는 “두 집사님이 보다 못해 저를 차에 태워 강화도에 바람을 쐬자가 데리고 갔다. 하지만 누가 알아볼까 하는 마음에 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잠깐 차에서 내렸다가 꽃도 보지 않고 그냥 집에 돌아왔다.”고 했다.
그리고 “그분들이 저를 영동 세브란스 정신과에 데리고 가서 상담을 받게 해주셨다. 원장님은 내적치유에 관한 책을 쓰신 분이셨는데 회복하기 어려운 심각한 조울증을 앓고 있다고 진단하셨다. 내가 받은 상처를 마음속에 꾹꾹 눌러 놓은 것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원장님은 상담이 끝나면 기도를 해주셨다.” 고 했다.
양 선교사는 그동안의 삶을 돌아봤다.
“아버지가 엄격한 분이셔서 아빠라고 불러본 기억이 없었다. 부모님이 다투는 모습 때문에 울면서 학교에 다닐 때가 많았다. 속을 썩이는 형제도 있었다. 선수 생활 때까지는 꾹꾹 누르고 있다고 은퇴하니까 올라온 것이다. 그래서 환청이 들렸고, 무엇이 잘못되면 내 탓이라는 자책감이 들었고, 폭식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2년 동안 정신과 상담을 받으면서 조울증이나 우울증은 영적인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양 선교사는 큐티모임(성경묵상나눔)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문제를 알았다.
시편 107편 10~14절을 읽으면서 자신이 아팠던 이유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고, 친밀감이 없어지면서 우울증이 찾아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우리가 받는 고난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고, 깨달음이 있다. 상담 치료를 받는 2년 동안 하나님과의 독대하는 소중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 예수님은 내게 주신 은혜가 많았는데, 내가 예수님께 해드린 것이 없었다.”
특히 8년 동안 국가대표 주전으로 뛰면서 후보 선수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제 자신만을 위해 이기적으로 살았던 것이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조울증에서 회복된다면 가난하고 지친 영혼을 돌보겠다고 다짐했다.
양 선교사는 “2년 가까이 조울증을 회복되지 못하자 한 사람씩 저를 떠나갔다. 하지만 예수님 한분만 나를 떠나가지 않으셨다. 그리고 건강이 회복되어 결혼 후 몽골 선교사 떠났다.”며 시편 107편 20절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는 말씀을 소개하면서 말씀 묵상의 중요성과 말씀의 인도하심을 강조했다.
양 선교사는 몽골 선교사로 14년 동안을 사역했다. 크리스천이 3명 뿐인 동고바주, 샌샨드에서 남편은 성경을 번역하며 교회를 세워 사역을 했고, 자신은 어린이들에게 탁구를 가르치면서 선교사역을 감당했다. 안면신경마비로 몇 개월 동안 고통을 겪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어린 두 딸의 교육을 위해 영국 WEC 본부를 통해 초등학교 교사가 두 딸만을 위해 사표를 내고 몽골로 와서 3년 동안 공부를 가르쳐주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갔고, 그 후 두 딸이 대전 국제학교에 입학해 학비 걱정 없이 공부를 하게 된 것 등 하나님의 은혜와 돌보심을 간증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 묵상이 모래바람과 물도 나오지 않고, 한국인도 거주하지 않고 10시간 이상을 기차를 타고 가야하는 척박한 선교 현장에서 자신의 영성을 유지할 수 있게 했다고 고백했다.
14년 동안의 몽고 선교사로 사역한 후 귀국한 양 선교사는 자신의 간증을 담은 책을 출판했다 |
관련링크
- 이전글[뉴스파워]소강석 목사 “태백시를 성시화 하라!”(2023.08.02) 23.08.04
- 다음글[뉴스파워]‘제5회 태백 성시화 여름축제’ 개막… 황공주 권사 찬양집회(2023.07.31) 23.08.0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