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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파워][나와 김준곤 목사 그리고 CCC-전용태 장로] “CCC 열성당원인 아내와의 약속”(2024.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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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WHCM (121.♡.133.199)
댓글 0건 조회 358회 작성일 24-05-13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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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김준곤 목사 그리고 CCC-전용태 장로] “CCC 열성당원인 아내와의 약속”


전용태 장로-법무법인 로고스 고문변호사, 세계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

 
전용태icon_mail.gif   기사입력 2024/05/13 [07:59]

한국CCC 역사는 고 김준곤 목사(1925.3.28-2009.9.29)를 빼놓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1958년 한국CCC 설립하고 대학생 선교를 못자리판으로 민족 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위해 평생을 헌신했던 김준곤 목사의 팔순을 기념해 지난 2005년에 제자지인국내외 동역자 110여 명으로부터 글을 받아 [나와 김준곤 목사 그리고 CCC]라는 기념문집을 만들었다기념문집에 원고를 주셨던 분들 중 여러분들이 이 세상을 떠났다역사적인 글들을 뉴스파워에 다시 올린다. (편집자 주)


▲ 2006년 2월 15일 서울성시화운동 헌신예배에 앞서 외환은행 본점에서부터 영락교회까지 거리 캠페인을 했다. 성시화운동 총재 김준곤 목사가 맨 앞장을 섰다. 우측은 전용태 장로    ©뉴스파워


제가 가장 존경하는 스승 김준곤 목사님과 CCC를 말하기 전에 먼저 아내 이야기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1969년 CCC 열성 당원인 아내와 교회 잘나가기로 약정하고 백년가약을 맺었습니다어느덧 세월이 흘러오늘 밤 자정을 지나면 생사고락을 함께한 아내와의 만남이 36년째로 접어듭니다세월의 긴박감 때문인지 많은 시간을 허송세월한 탓인지 올해 들어서는 많은 아쉬움이 찾아듭니다.

 

제가 살아온 전반 18년은 구원받지 못한 교인으로서후반 17년은 구원받은 교인으로 사는 생활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아내가 갑자기 병을 얻어 큰 수술을 한 후 저는 아내의 간절한 소원에 따라 주일 성수매일 전도매주 집에서 CCC 10단계 성경 공부 교재로 전도된 분들과 성경 공부를 한다는 세 가지 약속하고 그 약속을 지키게 되면서 예수님을 확실히 믿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제 생각과 철학으로 살던 제가 점점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불신으로 살면 잘 되는 것 같지만 결국 실패이고 믿음으로 살면 안 되는 것 같지만 결국 성공하게 된다는 소신 있게 말입니다이 인생의 진리를 먼저 깨달은 아내는 제가 세상 중심으로 살았던 그 많은 시절제가 주님께 돌아오게 하려고 많은 눈물의 기도를 드렸습니다저의 구원을 위해 수고하고 고생을 많이 한 아내가 정말 고맙습니다이제 후반전 호루라기를 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이때 주께 맡은 사명을 잘 감당하고 아내의 눈물을 말끔히 씻어 주어 조금이라도 빚을 갚아야겠습니다.

 

아내의 믿음은 타협을 모르고 색깔이 분명한 것이 특징입니다대학생 시절부터 오늘날까지 아내에게 믿음을 심어 주고 양육해 주고 계시는 김준곤 목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우리들의 대화 중심에는 언제나 김준곤 목사님 말씀이 있었고 CCC 이야기가 있었습니다그래서 저도 CCC 물을 먹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주로 아내가 떠 주는 물을 먹었지만 직접 먹은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제가 수원 비행단에 공군 법무관으로 있을 때인 1970년 12월 31일부터 1971년 1월 3일까지 서울대 농대 수원 캠퍼스에서 열린 민족 복음화 요원 강습회 때 참석한 기억이 있고 1972년 7월 31일부터 8월 4일까지 춘천 성시와 운동 전국 집회 때도 참석하였습니다결혼하면 교회 잘나가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내를 따라간 것이지만 갈 때마다 웬 학생들이 어디서 그리 많이 오는지 놀랐습니다.

 

최근에 김준곤 목사님께서 정리하신 춘천 성시와 운동 비망록(12페이지)을 보고 김 목사님께서 평생의 비전으로 갖고 계시는 불타는 민족 복음화 운동 선언을 1970년 12월 31일 CBS 방송을 통해 전국에 선포하셨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그리고 CCC 핵심 요원이었던 정정섭 장로님은 언젠가 억지로 진 십자가라도 축복받았던 굴레네 시온처럼 저도 아내를 따라다니다 보니까 복을 받게 된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춘천에는 두 번 또 갔는데 20년 후인 1991년 춘천 차장검사로 한 번, 1995년에는 검사장으로 한 번 발령받아 갔습니다. 1991년 춘천 발령 때는 부장 검사에서 치장검사로 승진은 하였지만너무 먼 곳이고 아내가 투병 중이라서 사표를 내고 집에서 변호사 생활할까 했습니다그런데 아내가 하는 말이 당신을 20년 전 춘천에 보내셨던 하나님께서 성시와 운동하게 하시려고 성시 발령을 낸 것이니 아무 말 말고 가라고 해서 억지 감사하면서 부임했습니다.

 

그때부터 제 머릿속에는 성시와 운동이라는 개념이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아내와 한 약속대로 거기서 매일 전도하고 퇴근 즉시 매주 관사에서 믿는 기관장들이 모여 성경 공부했습니다. 1971년 춘천 성시와 집회 때 참여했던 조남진 강원일보 전무이학규 교장그리고 김기수 검사장장성 2군단장 등 여러분이 참석했는데 기독 기관 단체장들의 성경 공부 덕분에 기관마다 직장 신우회가 우후죽순처럼 생겨 성시화 운동의 재정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1971년 당시 김준곤 목사님께서 만드셨던 춘천 성시화 운동 계획안 노트가 손에 잡혔는데 양도 꽤 많고 상당히 구체화 된 계획이었습니다그것이 오늘날 제 머릿속에 그려 가지고 있는 성시화 운동의 기본 설계도이며 기본 계획입니다.

 

그 후 인천수원서울을 거쳐 1995년 춘천에 검사장으로 다시 발령받아서 갔고 마침 법원장으로 온 양인평 장로와 함께 매주 전도하여 홀리클럽을 만들고 기관장 성경 공부를 계속하는 가운데 목회자중심의 성시화 운동본부가 창립되었습니다그 이후 오늘날까지 전국 26개 도시와 해외 7개 도시에 홀리클럽이 생겼습니다.

 

이러한 중요한 행사 때마다 민족 복음화의 전략으로 성시화 운동을 시작하신 김준곤 목사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김 목사님께서 오래오래 사셔서 계속 비전을 주시고 이끌어 주셔서 성시화 운동을 통하여 민족 복음화의 꿈이 가시적으로 나타나기만을 간절히 바라마지않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청장년 시절에 김준곤 목사님을 만나지 못한 것이 정말 후회스럽습니다인자하신 그 모습에서 나오는 진리의 말씀을 마음껏 듣지 못한 것이 안타까워 설교 테이프를 구하려 해도 다 어디로 갔는지 잘 모이지 않습니다그렇지만 지금부터라도 자주 뵙고 가르침을 받아 아내와 함께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성시화 운동과 가정을 세우는 일에 몰두하고 싶습니다.

 

전용태 장로는 서울대학교 법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행정고시와 사법고시에 합격했다춘천지검 검사장청주지검 검사장인천지검 검사장대구지검 검사장을 역임하고 법무법인 로고스를 설립해 대표변호사를 역임하고 현재는 고문으로 재직하고 있다한국기독법조인회 총재를 역임했으며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세계성시화운동본부 총재를 역임하고 현재 대표회장으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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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5/13 [07:59]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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