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한국신문]교회, 정치와 종교분리 내세워 정치적 책임 회피(2026.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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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정치와 종교분리 내세워 정치적 책임 회피
- 유달상 기자
6.3지방선거 앞둔 한국교회 정치적, 역사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한국교회 공명선거 말할 자격 있는가(?)
6.3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 때마다 묻는 말이지만, 한국교회는 정치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교계의 투표참여와 공명선거를 독려하는 캠페인도 오느 선거때와 마찬가지로 등장했다. 이념논쟁에 갇혀 있는 한국교회가 공명선거를 말할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서 국민들은 묻고 있다. 한마디로 ‘부정선거’를 제기하고, 국민에 의해서 선출된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는 보수적인 일부 교회가 공명선거를 말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지적은 한국교회가 정치적, 역사적,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결과이다. 사실 한국교회는 영미로부터 복음을 받아드린 이후,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구호처럼 외쳐 왔다. 그러면서도 정치에 깊숙이 개입, 정치적 혼란을 야기 시켰다. 정교분리는 일본제국주의 아래에서 조선통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조선통독부가 주창한 일제 잔재이다. 당시 총독부는 “조선의 정치는 총독부가, 조선인의 종교 활동과 교육, 육영사업은 종교가 담당한다”는 취지로 정교분리를 주창했다.
정교분리는 한마디로 통독부의 조선침략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당시 한국의 개신교의 교인들은 수명을 다한 이씨 조선의 유교사상과 봉건사상에 억눌려 왔던 민중들에게 기독교는 한국교회 교인들과 국민들의 희망으로 다가 왔다. 깨어난 개신교인들은 국내외에서 조선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민족운동의 중심에 있었다. 이를 철저하게 방해하기 위해서 총독부가 만들어낸 것이 정교분리이다.
당시 한국에 파송된 영미선교사들은 조선총독부의 정교분리에 화답하며, 기독교인의 정치참여를 철저하게 막았다. 특히 선교사들은 교회 안에서의 야학을 비롯한 성경공부를 하지 못하도록 금했다. 심지어 조선의 독립과 해방운동에 참여하는 교인들을 교회에서 출교하는 일까지 서슴없이 벌였다. 총독부에 의해서 만들어진 정교분리는 오늘날 한국교회가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는 결과를 가져다가 주었다,
그럼에도 한국교회 안에 민족의식이 작게나마 살아남아 3.1만세운동의 중심적인 역할을 감당했는가 하면, 일부 교회와 목회자들은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등 구약성경의 예언자적인 사명에 충실했다. 사실 보수적인 한국교회는 예언적인 목회자들을 향해 정치목사로 매도했다. 70년대 이후에는 이들을 ‘빨갱이’, ‘좌파’. ‘용공분자’로 매도하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조선총독부에 부역하며, 온갖 혜택을 누렸다.

일부 보수적 교회 이념적 갈등 부추기며, 사회를 혼란으로
‘정교분리’ 조선총독부의 기독교인 독립운동 막기 위한 술책
권력의 주변서, 권력자와 함께 권력을 공유
한국교회의 이런 잘못은 해방이후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보수적인 한국교회는 국사독재정권의 최대후원자이며, 수혜자가 한국교회의 보수적인 정치목사였다. 이들은 자유당 시절 이승만의 독재정권의 하수인이었으며, 국사독재정권 아래서 피 묻은 손에 기도를 해 주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6.25 한국전쟁 당시 김일성을 위한 조찬기도회를 갖는 범죄도 저질렀다.
한마디로 예언자 전통에서 이탈한 한국교회의 목회자와 교인들은 권력의 주변을 맴돌면서, 권력자와 함께 권력을 공유하며, 함께 누리려고 했고, 온갖 혜택을 받은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권력의 주변에서 권력의 맛을 본 한국교회의 보수적인 일부목회자와 교인은 부정부패 사건에 연루돼 사정당국의 조사를 받는 등 범죄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범죄사실에 대해 어느 목사는 “목사가 범죄자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냐? 목사가 해야 일이 아닌가”라면서, 자신의 범죄를 정당화 시켰다.
이들은 피 묻은 손에 기도를 해 주면서도, 한반도의 평화와 민주화, 노동현장에서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철저히 외면했다. 오히려 이들을 빨갱이. 좌파, 용공으로 몰아붙이며, 자신의 아성을 쌓았다. 오늘 한국교회는 이들을 등지면서, 교회의 신뢰는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해마다 문을 닫는 교회의 수가 급증하고 있다. 이는 분명 한국교회가 정치적, 사회적, 역사적, 경제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결과이다.
분명한 것은 한국교회가 맑은 정치와 건강한 사회,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서는 교회가 사회적, 정치적, 역사적 책임을 다해야만, 한국교회가 미래로 나갈 수 있다. 새로운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대망할 수 있다. 정교분리정책은 조선총독부에 의해서 주창돼, 박정희 정부가 군사독재정권을 정당화시키는데 철저하게 악용했다. 정교분리는 존 토크에 의해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학설이다.
존 로크의 정교분리는 “종교에 문제가 생기면, 정치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 종교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종교보호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로크는 미국 케롤라이나주 헌법을 만드는데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그것은 홈즈의 “종교에 문제가 생기면, 국가가 개입해서 해결해야 한다”는 국가종교론도, 종교를 보호하기 위한 학설이다.
존 로크는 정교분리로 교회를 철저히 보호했지만, “국가가 교회에 신앙고백을 요청하면. 교회를 이를 따라야 한다”고 했다. 일본제국의 아래서 한국교회는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서 기도했다. 특히 생명의 담지자인 여성들은 일본군에 붙잡혀 아리랑고개를 힘겹게 넘은 이 땅의 소녀와 일본군에 끌려간 청년들의 무사귀환,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 아리랑고개를 넘은 독립군들을 위해서 기도했다.
일제와 선교사들의 방해에도 이 땅의 어머니, 모든 여성은 국가를 위해 신앙고백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러한 삶과 문화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 한국교회가 지탱할 수 있었다, 오늘 한국교회가 곤궁한 가운데서도, 미래로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땅의 기독여성들은 교회의 정치적, 역사적 책임을 다하려고 했다. 이런 교회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길들여지면서, 교회는 나락의 길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나락의 길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교회
인간 모두는 하나님이 받아야 할 영광을 독차지 하려고 한다. 욕심쟁이가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 보니 국민들은 교회를 터부시하고, 있는 교인마저 교회를 떠나고 있다. 기독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의 종교인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여기에다 대학입시생 중 각종 신학대학교 지원자도 크게 줄어들면서, 목회자의 고령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한마디로 나이가 어릴수록 교인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얘기이다.
그것은 주일날 예배에 참석하는 교인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대부분의 교인이 60대 이상의 어르신이다. 특히 농어촌에 위치한 교회는 60대 이하의 교인을 찾아 볼 수 없다. 목회자는 어르신 몇 명을 놓고 예배를 드리는가 하면, 목회자 가족만 예배를 드리는 가족교회도 엄연히 존재한다. 이는 교회가 고령화, 늘어가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교회가 교회의 역할, 교회가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면서, 교회는 국민들로부터 버림받고 있다.
목회자들은 교회 안에서 생활비 자급도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도시교회에 손을 내밀어야만 생활비를 조달할 수 있는 형국이다. 그렇다보니 목회자는 큰 교회 목회자들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다. 심지어 교인의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2-3개 교회가 통폐합하는 경우도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갤럽은 ‘한국인의 종교 1983-2025 보고서에서, 2025년 대한민국 성인 중 40%가 종교인으로 드러났다.
그 중에 종교별 신자 수는 불교 56%로 가장 많고, 다음은 개신교 34%, 천주교 32% 순이었다. 이 수치가 말해주고 있듯이 한국교회 교인의 고령화는 물론이고, 교회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을 그대로 말해준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종교인 중 60대는 52%, 20대는 24%로 두 배의 격차를 보였다. 여기에는 인구감소의 원인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교회들이 젊은이와 어린이들을 위한 과감한 투자를 기피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국교회는 ‘다음세대를 위한 선교’를 말한다. 어린이가 없어 주일학교를 폐쇄하는 교회도 적지 않다. 한국교회의 미래를 책임질 목사후보생의 수도 크게 줄어들었다. 각종 신학교 마다 지원생이 없어, 모자라는 학생을 외국의 학생들로 채우거나, 신입생의 수를 줄이고 있는 형국이다. 신학교의 학생 수가 차고 넘쳤다는 이야기는 이제 옛이야기가 됐다. “20대는 4명 중 3명이 ‘어떤 종교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대답했다.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 크게 쇠퇴
80년대만 해도 기독교인 1300만 명이라고 자랑 했다. 당시 한국교회는 사회와 정치에서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1990년 이후 한국교회는 계속해서 교인의 수가 줄어들면서, 교회의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도 크게 줄어들었다, 여기에다 기독교의 편향된 정치적 이념은 국민들로부터 교회를 거부하는 결과를 가져다가 주었다. 신학교는 입시생이 없어 교수들이 학생들을 모셔와야만 하는 형국에 놓였다. 이는 교회가 늙어가고 있다는 것이며, 성직자 역시 젊은 목사후보생들이 없어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 같은 현상의 원인은 첫째, 인구감소이며, 둘째, 교회재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 미래세대에 대한 과감한 투자 회피, 셋째, 종교가 사회적, 정치적, 역사적, 종교적 책임을 회피한 결과라는데 이의가 없다. 그러면서 일부 보수적인 교회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외치면서도,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순수한 종교의 가치를 상실하게 했다. 그것은 종교가 종교 간의 이념갈등과 지역갈등, 정치 갈등의 중심에 서 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종교를 믿지 않는 이유로는. △정신적, 시간적 여유 없어서 20% △종교에 대한 불신과 실망 9% △나 자신을 믿기 때문에 9% 등의 순이었다. 또한 종교인의 고령화도 심각한 것으로 보고됐다. 60대 이상, 불교는 56%, 개신교는 34%, 천주교 32%였다. 전체 종교인 중 65세 이상 비율은 28.9%로,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 21.2%를 웃돌고 있다.
목사후보생을 길러내는 각종 신학교는 젊은 학생보다도,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젊은 목사후보생들이 떠난 자리를 채우고 있다. 이러다가 한국교회 역시 유럽교회와 마찬가지로 교회당이 박물관 또는 양로원, 술집 등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교회가 정치적, 사회적, 역사적, 경제적 책임을 회피하고, 교회가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면, 교회는 국민들로부터 버림을 받게 된다는 것을 갤럽조사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6.3지방선거를 앞두고, 한국교회가 정치적, 사회적, 역사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치적, 사회적, 역사적 책임을 다하는 교회
한국장로교총연합회를 비롯한 한국교회 언론회, 한국기독교장로회 등 각 교단 및 단체는 6,3지방선거를 앞두고, 교회의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책임을 다하는 교회가 되어 줄 것을 요청하는 서명발표 및 공명선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문제는 편향된 정치적 이념 갈등을 부추기는 교회들도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여러 부류의 교인들이 모이는 신앙공동체라는 것을 망각한 결과이다.
세계성시화운동본부는 ‘기도하고 투표하는 당신이 주민자치의 주인’이란 구호 아래 기독교인들이 적극적인 투표로 나라와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주역이 돼줄 것을 요청했다. 6.3지방선거는 시·도지사와 시도의원, 구·시·군의회 의원, 교육감을 선출하고, 일부 지역에선 국회의원 보궐선거도 함께 치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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