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파워][교회탐방] 풀무불로 연단되어 순금처럼 쓰임받는 군산 늘사랑교회 고영완 목사(2025.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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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탐방] 풀무불로 연단되어 순금처럼 쓰임받는 군산 늘사랑교회 고영완 목사 | ||||
| 교회 예산의 30퍼센트를 선교비 사용하며 해외 15개 교회 건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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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늘사랑교회는 해외 선교를 위해 헌신한 교회다. 진보적인 교단인 한국기독교장로회에 소속된 늘사랑교회는 동티모르를 비롯해 해외 15개의 교회당를 건축했다. 교회 예산의 30퍼센트를 선교비로 사용하는 교회다.
이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고영완 목사는 전북은 물론 총회에서 유명인사로 통한다. 한신대와 한신대 신대원을 졸업하고 풀러신학교에서 목회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군산시기독교연합회 대표회장을 역임했다.
또한 전북기독교총연합회 상임부대표로 내년에 회장에 취임한다. 전북성시화운동본부 사무총장을 맡아 전북 14개 시군 성시화운동을 총괄하고 있다. (사)좋은친구들, 비전스파크청소년 이사장을 맡아 청소년선교에도 힘을 쏟고 있다. 특히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서기와 법제부장을 역임하면서 교단을 이끌 유력 목회자로 인정을 받고 있다.
이런 직함과 그의 외적인 용모를 보면 아무런 어려움 없이 탄탄대로의 길을 걸어온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고 목사를 알면 알수록 풀무불 속에서 연단 된 순금처럼 엄청난 시련의 터널을 통과한 목회자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광야학교’를 통과해 교인들과 함께 마침내 가나안 복지에 이른 영적 지도자다.
고 목사는 장로와 권사인 아버지와 어머니의 기도 속에 성장했다. 어머니는 아들이 목회자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회사에 다니면서 주일학교 총무, 중고등부 교사, 청년회장을 맡아 열심히 교회 활동을 했했다. 그리고 스물네 살에 한신대 신학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신학교 3년 만에 교회 전도사 사역을 시작했다. 마침 부임한 교회가 교육관을 짓기 이해 건축헌금을 하자고 할 때였다. 고 목사는 장학금을 받으면 그 돈 전부를 건축헌금으로 드리겠다고 했다. 그 믿음으로 장학금을 받아 전체를 드렸다. 특히 성도들이 뜨겁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도전을 받아 매일 밤 9시에 교회에서 혼자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는 체험을 했다. 사역의 부흥을 경험했다.
신학교를 졸업하면서 고 목사는 기도원에서 기도하는 중에 교회 개척을 결심했다. 자신이 결심했다기보다는 하나님의 이끄심에 대한 순종이었고, 어려운 결단이었다. 쌍둥이가 100일 정도 된 때였다. 수중에는 단 돈 5만원도 없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너의 모든 재산을 처분하라.”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시자 새 차를 처분했다.
신학생 때 교회 교육관 건축을 위해 장학금 전부를 바친데 이어 교회 개척을 위해 새 차를 처분한 것이다. 그렇게 그는 중요한 시점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는 결단을 했다. 군산에서 제일 높은 산인 군산시 성산면 오성산 정상에서 창립예배를 드렸다.
1995년 5월 첫 주일예배를 상가교회 예배당에서 드리고 본격적인 개척 목회를 시작했다. 그때부터 광야학교가 시작됐다. 엄청난 고난이 닥쳐왔다. 그때마다 고 목사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결단을 했다.
가장 큰 아픔은 아내의 갑작스런 말기 암 진단이었다. 고 목사는 청천병력 같은 소식을 듣고 40일 금식기도를 시작했다. 사모도 기도원에서 7일간 금식기도를 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하심을 간구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나님은 금식 38일만에, 대학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은 지 38일 만에 29세의 사모를 천국으로 데려가셨다.
“함께 둘러 앉아 예배를 드리는데 찬송가를 함께 부른 후 좌우에 앉아 있던 장모님과 저를 한번 돌아본 후 웃음기 띤 얼굴로 그대로 하나님 품에 안겼어요. 아무 불평 없이 매일 기도하며 전도한던 아내였습니다. 당시 쌍둥이 딸들은 만 세 살을 갓 넘긴 때였습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놀라운 은혜가 임했다. 예배와 기도시간은 40~50분에서 1시간 30분으로, 다시 3시간으로 늘어났다. 교인들은 새벽 4시에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직장으로 출근을 했다. 교인들에게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다. 회개와 각성, 내적치유, 귀신이 떠나가는 역사가 일어났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이 임한 것처럼, 늘사랑 다락방에 성령이 오셨습니다. 성령의 불을 통해 연단하셔서 교회를 정결하게 하시고, 예배하는 교회로 만들가셨습니다. 고난이 연단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통하여 연단하신 것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좌절과 낙망 속에 헤맬 때도 하나님은 여전히 예배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고 목사에게 또 시련이 찾아왔다. 재혼한 사모와의 사이에 태어난 만 세 살의 아들이 교통사고로 하나님 품에 안긴 것이다. 사모가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 지 6년만의 일이었다. 고 목사는 그 고통스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예배를 받으시기 원하신다는 음성을 들었다.
고 목사의 광야행전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예배 장소를 다섯 번이나 옮겼다. 그런 과정에도 후배 목사가 교회를 개척한다고 하자 선뜻 제정을 지원했다. 또한 동티모르에 교회를 세운다고 하자 선교비로 몇 천 만원을 지출했다.
교회당 건축을 하는 대신 조립식 건물을 유지하면서 전체 교회 예산의 30퍼센트를 선교지로 사용하고 있다. 그동안 해외에 15개의 교회를 세웠다.
고 목사는 지난해 11월 23일 전북성시화운동본부 사무총장을 맡았다. 지난 6월 19일부터 20일까지 남군산교회와 라마다호텔에서 세계성시화 전북대회가 열렸다. 전국 시도, 시군에서 250여 명의 지도자들이 참가했다. 숙박과 식사, 선물 등 수천만 원의 예산이 필요했다.
고 목사는 전북대회가 결정되자 결단을 했다. “만일 예산이 부족하면 아버지께서 유산으로 물려주신 집을 내놓겠습니다. 저는 총회장보다 성시화운동 사역을 통해 시민들이 예수를 믿고 우리가 사는 도시가 거룩한 도시가 되는 것을 원합니다. 그러니, 돈 걱정 말고 기쁘게 섬깁시다.”
전북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 김도경 목사를 비롯한 임원들은 열과 성을 다하여 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하여 힘을 쏟았다. 20일 저녁집회에서 200여 명의 목회자들이 공동축도를 했다. 군산과 전북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기도였다.
“광야학교는 철저하게 낮추시고, 순종하는지 시험받으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곳입니다. 즉, 겸손과 순종입니다. 그것만 배운다면 광야학교에서 오랫동안 유급할 이유가 없습니다.”
고영완 목사는 성시화운동 사역 등 대외적인 사역과 함께 청소년사역에도 집중하고 있다. 다음세대를 살려야 한국 교회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매년 여름과 겨울 방학에 청소년 비전캠프를 열고 있다. 벌써 20회를 훌쩍 넘겼다. 이 집회로 비전스파크청소년선교회가 설립됐다.
“저는 주의 종입니다. 그러므로 제 인생의 주인은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나의 자원은 다 주님의 소유입니다. 돈이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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