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파워][교회 탐방] 태백성시화운동의 중심 교회 태백순복음교회(2025.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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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태백시 학마을길 101, 태백순복음교회(담임목사 오대석 목사)는 태백시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다. 오대석 목사와 권석열 사모가 1986년 8월 교인 5명이 있던 이 교회에 부임해 만 39년 동안 사역해오고 있다.
삼척 도계순복음교회에서 첫 사역 시작
전북 순창 출신인 오 목사와 충남 서산 출신인 권 사모는 1984년 12월 초에 삼척 도계순복음교회에 부임하면서 강원도에서 목회 인생이 시작됐다.
도계순복음교회에 부임해 집들을 방문했다. 집과 집 사이는 판자로 가림막을 한 천막촌을 형성하고 있었다. 석탄 가루가 시냇물을 덮고 있었다. 옷가지를 빨래를 해서 마당에 널면 까맣게 될 정도였다. 탄광에서 채광을 하다가 죽은 사람의 얼굴도 까맣고, 온 몸도 까맣게 되어 있었다. 석탄가루가 몸에 묻어 잘 씻겨나가지 않았다.
그처럼 열악한 상황에서 목회 초년병인 오 목사 부부는 개척사역을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함께하심을 깊이 경험했다.
“도계에서 개척을 할 때 엄청난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어요. 다리가 붙은 사람이 펴지고, 귀신들린 열일곱 살 소녀가 기도로 고침을 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때는 성령의 역사인지도 모르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복음 전도를 전하면서 기도해 주었더니 치유의 역사가 일어났어요.”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70명의 제자들을 둘씩 짝을 지어 예수님이 가시려던 동네로 전도하러 보내셨다. 손에 가진 것도 없었고, 무명의 제자들이었지만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각 동네로 들어가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파했을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오 목사 부부가 탄광지역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불쌍히 여겨서 간절하게 기도해 주었을 때 하나님의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났던 것이다.
1986년 8월 태백순복음교회에 부임하다
오 목사 부부는 1986년 8월 성도 5명이 있는 태백순복음교회로 부임했다. 도계에서의 형편처럼 어려웠다. 하지만 교회 건축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천장이 내려앉은 슬레이트 지붕의 단독주택에서 교회를 시작했어요. 그때는 교회 부흥보다 예배당 건축을 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기도한 지 20년 동안 교회를 건축하려고 옆집을 매입하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교회 옆에 있는 두 집 주인이 집을 팔지 않았어요.”
학(鶴)이 많이 산다는 학마을에 1만4천190평의 맹지 구입하다
오 목사는 하는 수없이 학(鶴)이 많이 살았다는 학마을에 1만4천190평의 맹지를 3억9천 만 원에 매입했다. 그런데 그 때부터 교회가 풍비박산이 나기 시작했다. 교인들이 왜 그렇게 많은 땅을 샀냐고 따졌다. 교회는 계속 어려움에 빠져들었다.
부목사가 장로, 권사들을 데리고 나가 교회를 개척했다. 건강도 악화됐다. 설상가상으로 교인들 중에는 3억9천에 매입하면서 오 목사가 1억 원을 받아 챙겼을 것이라고 오해를 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해 충성스럽게 섬기는 주의 종들과 교회를 고난과 시련 속에 내버려두시는 분이 아니다. 그 시련은 믿음을 단련시켜주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는 도구다. 오 목사 부부는 묵묵히 기도를 했다.
“당시 춘천순복음교회 장로님이 태백 농협장으로 부임해서 우리를 도와주셨어요. 그 장로님이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내가 태백순복음교회 오대석 목사를 사랑한다. 도와줘라’고 말씀하셨답니다.”
오 목사는 땅 주인이 농로(農路)를 막아버리자 4억을 주고 또 땅을 사야 했다. 부채는 8억으로 늘었다. 한 달에 이자만 600만원씩 냈다. 신용불량자가 되면 교회를 건축을 못하니까 매번 카드를 돌려막기하면서 재정적 어려움을 극복해나갔다. 요셉, 지현, 수현 세 아이들 학원도 보낼 수 없을 정도로 재정적으로 쪼들렸다.
2001년, 권석열 사모는 그 상황이 너무 지치고 슬퍼서 잠도 못자고 기도도 아닌 상황에서 꿈을 꿨다.
“넓은 들판을 걸어가고 있었어요. 목사님과 성도들이 따라오고, 늙은 호박도 있고, 건너가야 하는데, 꼬리도 없고, 대가리도 없는 5마리의 뱀들이 나를 죽여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그 때 양이 나타났어요. 은빛나는 그 양이 서서 뱀들을 떼어내서 던져버렸어요. 그리고 한 마리만 남아 있었어요. 그때 목사님이 일어나라고 해서 눈을 떴어요.”
오해와 시련 가운데 예배당 건축을 시작하다
당시 예배당 건축을 하지 못하도록 교인들이 똘똘 뭉쳐서 연판장을 돌렸다. 오 목사를 내쫓으려고 했다. 하지만 권 사모의 꿈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응답을 해주신 것으로 믿었기에 두려움이 없었다.
오 목사 부부는 돈은 없었지만, 교회를 건축하고자 하는 준비를 계속했다. 그러나 돈이 없어서 건축 설계를 할 수가 없었다. 돈이 없으니까 설계를 안 해준 것이다. 그저 천막을 치고 기도만 했다. 그런데, 마침 오 목사의 친구 교회를 섬기는 장로에게 의뢰해 1,000명 규모의 교회당 설계도를 받았다.
“태백에는 탄광 60개 중 3개만 남았어요. 매주일 성도들이 떠나니까 매주일 울었어요. 그래도 우리가 생각하기에 사람들이 다 떠나도 태백시민 1,000명은 남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시청에 건축 서류 접수하는 데만 3,000만원의 비용을 지불했다. 그러면서 무효가 되지 않도록 기도했다. 건축비가 없어서 간절히 기도했는데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경험한 일이 일어났다.
하루는 권석열 사모가 새벽기도에 나온 초신자에게 건축비 1,000만원 만 빌려달라고 말했더니 “사모님, 나는 꿔줄 돈이 없어요. 그냥 1000만원 헌금할게요.”하면서 선뜻 헌금을 했다. 다른 한 명의 초신자가 또 1,000만원을 헌금했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신협에서 1,000만원을 대출받았다.
예배당 건축 사연 듣고 조용기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도 감동해 1억 작정
건축 과정에서는 경제적인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치열한 영적 전쟁이었다. 건축 과정에 건축업자가 자주 바뀌었다. 결국은 오 목사가 직영을 했다. 감사하게도 소송 한번 없이 건축을 마무리하고, 2006년 11월 30일 준공을 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를 초청해 입당예배를 드릴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여러 사정이 겹쳐서 못 온다고 했다.
“이듬해에 여의도순복음교회 김태경 장로님 레이싱파크를 인수하고 돌아가는 길에 태백시에 교회당 건물이 근사하게 서 있는 것을 보고 둘러보려고 찾아왔어요. 그래서 조 목사님을 모시고 싶다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내년에 레이싱파크에서 조용기 목사님을 모실 의향이 있다고 해요. 그러면서 레이싱파크장으로 조용기 목사의 점심 식사를 준비해왔으면 좋겠다 해요.”
권석열 사모는 200명 분의 여의도 장로들의 불고기와 조용기 목사가 먹을 등심 등을 준비해서 음식을 차려 드렸다. 조 목사는 오 목사 부부로부터 예배당 건축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듣고 태백순복음교회를 방문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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