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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한국신문]신안 ‘스토리가 있는 김준곤 목사 벽화’ 기독교 명소로 주목(2025.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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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24회 작성일 25-11-07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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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스토리가 있는 김준곤 목사 벽화’ 기독교 명소로 주목

  •  유종환 기자
  승인 2025.10.27 10:44

 

“순교와 선교의 섬 신안군 기독교 명소 탐방의 허브 역할 하게 되길”


신안 ‘스토리가 있는 김준곤 목사 벽화’를 찾은 평택순복음교회 강헌식 목사와 권사들.신안 ‘스토리가 있는 김준곤 목사 벽화’를 찾은 평택순복음교회 강헌식 목사와 권사들.

대학생 선교를 기반으로 민족복음화운동을 주도했던 김준곤 목사(1925-2009) 고향마을인 전남 신안군 지도읍 봉리 원동마을에 기독교인들의 방문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김준곤목사기념사업회가 김 목사 탄생 100주년을 맞아 지난 10월 4일 폭36.6미터의 스토리가 있는 김준곤 목사 벽화를 완성한 소식이 알려지면서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김 목사의 벽화와 생가를 방문하기 위한 줄이 끊이지 않는 것.

사진 왼쪽부터 이동건 팀장, 백중현 종무관, 김철영 목사, 최용호 목사, 박정완 장로.사진 왼쪽부터 이동건 팀장, 백중현 종무관, 김철영 목사, 최용호 목사, 박정완 장로.

가장 먼저 찾은 이는 대만에서 사역하는 변성진 선교사와 배인석 목사(함평 할렐루야교회), 21일에는 평택순복음교회 강헌식 목사(평택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와 권사 40여 명이 방문을 이어갔다또한 23일에는 김준곤목사기념사업회 사무총장으로 벽화 등 기념사업을 기획 추진하고 있는 김철영 목사(세계성시화운동본부 사무총장), 문화체육관광부 백중현 종무관신안군청 문화관광과 이동건 예술팀장곽승혁 연구관전남교회총연합 박정완 사무총장문준경전도사순교기념관 안상기 사무국장 등이 바통을 이어 받았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31일에는 백석대 주도홍 전 부총회장을 비롯해교수들이 부부 동반으로 스토리가 있는 김준곤 벽화를 감상한 후문준경전도사순교기념관을 탐방할 예정이다.

김준곤 목사 생가.김준곤 목사 생가.

23일 현장을 찾은 김철영 목사는 이곳에서 10분 거리에 48인 순교자 교회인 임자진리성결교회가 있고, 30분 거리에 증도 문준경전도사순교기념관이 있다, “그곳에서 배를 타고 소악도 12사도 순례길을 걸으면서 신앙 묵상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진보 신학의 거장인 서남동 박사의 발자취를 찾아가 보려면 자은도 생가를 탐방할 수 있을 것이라며, “김준곤 목사 기념사업이 잘 추진되어 순교와 선교의 섬 신안군 기독교 명소 탐방의 허브 역할을 하게 되길” 기대했다.

현장을 찾은 관람객들.현장을 찾은 관람객들.

이밖에도 백중현 종무관은 민간 차원에서 기념사업을 추진해 이렇게 기독교인들이 즐겨 찾는 명소로 만들어가는 것이 보기에 좋다고 밝혔고이동건 예술팀장은 문준경전도사순교기념관과 연계한 기독교인들의 순례 코스로 주목을 받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에선 또 김철영 목사가 지도봉리교회 최용호 목사에게 봉리교회를 김준곤목사기념교회로 지정하면 좋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원동마을 입구에 세워진 지도봉리교회는 김준곤 목사가 1951년 4월 15일 첫 복음전파로 시작된 교회로, 1973년 자신의 소유인 밭을 교회에 기부해 현재 예배당이 건축됐다더불어 김 목사의 모친 김통안 권사는 이 교회에서 1호로 권사 임직을 받았으며평생을 김준곤 목사의 사역을 기도로 지원했다.

강헌식 목사와 사모강헌식 목사와 사모

한편 김 목사는 장로회신학교를 1회로 졸업하고경기도 파주 금촌장로교회 전도사로 시무했다그러던 중 6.25 전쟁이 발발하자 인정진 사모(초등학교 교사)와 어린 딸(은희)를 데리고 고향으로 내려왔다이후 10월 3일 인정진 사모는 순교를 당했고부친은 학살을 당하는 아픔을 겪었다김 목사 본인도 죽음 직전에 국군에 의해 극적으로 구출됐다.

생가 뒤편 선영에는 6.25 때 순교한 인정진 사모의 묘가 있다김 목사는 서거하기 1년 전인 2008년 4월에 순교 추모비를 세웠다.

추모비에는 “1924년 10월 15일 생지도국민학교 교사 재직 중 담임 어린이들 주일학교 한 죄로 토착 공산당들에게 1950년 10월 3일 영광스런 순교를 했다슬하에 딸 김은희가 있고만주 마창에서 남편 김준곤 목사가 일본군에게 사형선교를 받고 도망해서 숨어 있다가 해방을 맞아 결혼해서 남편 고향인 원동으로 피난 왔다가 순교함서기 2008년 4월 일김준곤 목사 봉헌이라고 쓰여 있다.

인정진 사모가 순교할 때까지 재직했던 지도국민학교(지도초등학교)는 김준곤 목사가 다녔던 학교로 2009년 6월 22일이 개교 100주년이었으니올해로 116년 된 학교다원동마을에서 지도초등학교까지의 거리는 7.5킬로미터이다.

김 목사는 인정진 사모 순교 후 이화여대 약학과를 졸업하고 목포 정명여중 과학교사로 재직 중이던 전효심 선생과 재혼하고 법성교회에 부임해 다시 목회를 시작했다.

이후 광주서부교회(서현교회)를 거쳐 광주숭일중고등학교 교목과 교장을 역임했다애양원 한성신학교 교수로 한 학기 강의 후 미국 유학을 갔다가 풀러신학교에서 빌 브라잇을 만나 1958년 한국CCC를 창설했다그리고 민족복음화운동을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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