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파워][포커스 제언] Again 1교회 1학교 운동을 전개하자(2025.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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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평양대부흥이 시작된 2년후 1909년에 한국교회에는 <백만인 구령운동>과 함께 <1교회 1학교 운동>이 시작되었다. 한국교회에 임한 성령의 뜨거운 불길을 백만인의 영혼을 구원하는 꿈으로 승화시켰다. 당시 인구가 1,450만명에 불구한대, 전체 인구의 7%에 가까운 100만 영혼을 구원하기를 기도하는 큰 꿈을 품은 것이다. 그리고 당시 절대 절명의 위기에 빠진 국가 회복과 미래세대 양육을 위해 <1교회 1학교 운동>을 통해 <교육문예부흥>이라 할 만큼 많은 수의 교회주일학교(Christian Sunday School)와 기독교학교(Christian Day School)가 설립되었다.
1909년 한국을 방문하여 기독교학교 현장을 둘러본 미국 북장로교 선교회 아더 브라운 총무는 “1902년 고작 63개 학교에 남학생 845명, 여학생 148명에 불과하였으나 지금은 589개 학교에 1만916명의 남학생과 2,511명의 여학생이 재학“하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불과 7년만에 기독교학교의 수가 10배나 증가하였다는 것은 100년이 휠씬 지난 지금에까지 매우 큰 도전을 주고 있다.
1907년 평양대부흥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성령의 임재로 인한 뜨거운 <회개운동>이 일어났지만, 이것과 함께 사경회라는 형식을 통해 성경공부와 말씀전파가 함께 일어났다는 것이다.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단순한 회개운동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을 깨닫는 <각성운동>으로 발전하였다. 또 그 열매가 <백만인 구령운동>과 <1교회 1학교 운동>으로 연결된 것이다. 또 <1교회 1학교 운동>에 의한 학교교육은 빼앗긴 나라의 주권을 회복하기 위한 <교육구국운동>으로 발전하였고, 여성의 권리를 회복시키는 <사회개혁운동>으로 발전되었다. 이때 세워진 오산학교 등의 수많은 기독교학교는 10년후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하는데 결정적인 진원지가 되었고, 일제 강점기에 민족의 일꾼들을 키워내는 터전이 되었다.
미국에서 1960년대초 자유주의 신학이 확산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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