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태 공동총재, 스위스 제네바 방문 보고 > 신문보도

언론보도

신문보도


전용태 공동총재, 스위스 제네바 방문 보고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WHCM (211.♡.6.49)
댓글 0건 조회 1,698회 작성일 11-08-08 11:26

본문

세계성시화운동본부 전용태 장로는 7월 11일일부터 8월 2일까지 스위스 제네바를 방문하고 돌아왔다. 전 장로는 8일 아침 세계성시화운동본부 월요조찬기도회에서 보고회를 가졌다. 전 장로는 부인 최호자 권사(세계성시화운동본부 민들레중보기도팀장)와 함께 23일간 제네바를 방문해서 성시화운동의 모델을 만들었던 존 칼빈의 유적지와 종교개혁박물관 등을 방문했다.  또한 1972년 7월 한국 최초로 성시화운동을 시작했던 춘천시와 제네바시와의 교류 협정 의향서를 제네바시에 전달했다.전 장로는 존 칼빈의 교회 지도자 양성과 국가지도자 양성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갖고 활동했던 존 칼빈의 정신을 성시화운동을 통해 한국적 상황에서 계승해 가자고 강조했다. 전 장로는 이를 위해 칼빈이 제네바 아카데미를 만들었던 것처럼 성시화아카데미를 통해 성시 시민 지도자를 양성하겠다고 밝혔다.





----------------------------------------------------------------------------------------
다음은 제네바 방문 소감

-의암호에서 레만호로-



이번 저희 부부의 제네바 방문 중 함께 해주셨던 주님과 기도해주신 모든 분들게 감사를 드리며 성시화 동역자님들(성시화운동본부 및 홀리클럽)께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결과를 보고드림


1. 방문일정

(1) 방문자

① 전용태 장로(성시화운동 공동총재)

② 최호자 권사(성시화운동 중보기도팀장)


(2) 방문기간

2011.7.11-2011.8.2(출발 및 도착 날짜까지 23일간)


(3) 주요방문지역

① 스위스: 제네바, 바젤, 베른, 취리히, 로잔, 몽뜨레, 소금광산

② 이태리: 밀라노, 베네치아(베니스), 피렌체(프로렌스), 제노바 및 그를 연결하는 이태리 북부지역 주요 도시들

③ 프랑스: 몽브랑


2. 방문목적

(1) 성시화운동의 역사성·정체성·탐구

성시화운동의 원형인 1536-1564년의 스위스 제네바 성시화운동을 주도했던 존 칼빈(1509-1564)의 개혁사상연구 및 현지탐방으로 현재 한국을 중심으로하여 일어나고 있는 성시화운동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좀 더 확고히 함

(2) 가족성시화사명고취

2011년 2월, 제네바 참사관으로 파송된 사위 권순철 집사(검사로서 임지마다 성시·홀리클럽에 동참하며 제천홀리클럽을 창립하고 아버지 학교를 개설운영)와 딸 미연 및 두 손자를 격려하고 자녀들에게는 존 칼빈의 개혁정신을 이어 받아 날로 쇠퇴하여가는 유럽의 교회에 다시 불을 붙이는 성시선교사의 사명을 일깨워주고 손자들에게는 그 손자들이 그리스도의 병사가 되게 하는 영적인 법칙인 4영리(손자병법)를 계속 교육하기위함


3. 방문배경

(1) 40년 기도

1970년 자정을 계기로 민족복음화를 전국에 선언한 김준곤 목사님(한국대학생선교회 및 성시화운동 총재)이 민족복음화를 효과적으로 성취하기 위하여는 전 교회가 전 도시에 전 복음을 전하는 3전운동으로 한 도시만이라도 완전복음화되는 모델도시가 있어야 하겠다하여 존 칼빈의 스의스제네바 성시화운동을 원형으로하여 한국의 성시화운동을 1972년 제네바와 같은 호반의 도시 춘천에서 처음 시작하였음. 그 이후 오늘날까지 40년간 제네바와 같은 성시화운동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여왔음.

(2) 기도응답

우리 안에서 성시화운동을 행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시화운동의 소원과 꿈을 주시고 기도하는 우리로 성시화운동을 행하게 하시고 계심(빌2:13)

우리는 성시화운동이 난립되지 않고 그 정체성과 역사성이 잘 지켜지고 당대의 사명 잘 감당하다가 후대에 전수되게 해달라고 성시화운동 공동기도문에 따라 중앙과 각 지방에서 전심으로 기도드려오고 있던 중 자녀들을 먼저 제네바로 보내시고 이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으로 이번 방문이 이루어진 것임을 확신함.


4. 방문준비

제네바 방문을 며칠 앞두고 하나님께 기도드리던 중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몇가지 준비를 하게 하셨음.

(1) 춘천시장(이광준 집사)의 의향서

일본, 중국, 에티오피아 3개국 8개 도시와 교류를 하고 있는 춘천시는 교류의 폭을 넓히기 위해 춘천과 제네바는 여러 가지 유사점이 많으므로 (교육, 문화, 예술, 체육, 관광, 무공해산업, 자연환경, 동계올림픽 유치 희망 등) 상호교류와 동반성장을 목적으로 상호교류를 희망하는 제네바시장(Piere Maudet)에게 보내는 의향서 작성 지참.

(2) 성시화운동 소개서 등

한국의 성시화운동본부 또는 교회와 제네바한인교회나 현지개혁교회 간의 교류협력을 위해 스위스 제네바 종교개혁을 모델로 하여 춘천에서 시작된 한국의 성시화운동의 개요와 두 도시 간의 유사성에 관한 간략한 소개서와 중보기도 관련자료 지참.

(3) 스위스와 인접국가의 역사개관

프랑스 출신인 존 칼빈이 어떻게 다른 나라인 스위스의 제네바에 가서 종교개혁과 제네바개혁을 단행하게 되었는지 존 칼빈의 생애, 개혁의 배경, 개혁의 내용, 개혁의 전파과정 등을 탐구하기위해 사전준비



5. 방문결과

(1) 방문지역

① 이태리

로마카톨릭에 대항하여 루터, 쯔뱅글리, 칼빈의 유럽종교개혁을 촉발한 르네상스 발상지인 피렌체를 비롯한 이태리 북부지방을 순회

② 스위스

칼빈 탄생 500주년을 기념하여 발간한 책자 칼빈(세계칼빈학회 회장 Herman.J.Selderhuio 저)과 칼빈과 한국교회(생명의 말씀사), 기독교 강요(칼빈 저) 등을 읽고, 칼빈이 설교한 제네바 피에르대성당(칼빈이 설교한 설교대와 의자가 있었음)과 그가 강의한 오디토리움. 루터와 칼빈의 숨결이 느껴지는 제네바 종교개혁박물관. 칼빈의 종교개혁 핵심사업으로 설립한 제네바 대학(1559.6.5. 제네바 아카데미로 설립)을 방문. 칼빈이 파렐과 같이 제네바에서 추방되어 파렐은 뇌사텔로 칼빈은 스트라스부르그로 갔다. 그가 1536년 기독교강요 초판을 발간한 바젤로 가서 교수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마치 파렐이 제네바를 지나 바젤을 거쳐 스트라스부르그로 갈려고 하던 칼빈을 강권하여 제네바에서 1차 개혁을 했던 것과 같이 스트라스부르그의 부처가 칼빈에게 바젤로 가지 말고 스트라스부르그에 와서 개혁을 하라고 강권하여 칼빈은 스트라스부르그로 가게 되었다. 칼빈은 스트라스부르그로 가서 개혁운동을 하면서 로마서를 주석했고 결혼도 하였으나 부인과 자녀들은 일찍이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칼빈의 발자취를 따라 바젤에 가서 칼빈이 기독교강요 초판을 발행한 인쇄소를 찾아갔는데 지금도 인쇄소를 하고있다고 한다. 바젤을 지나 스트라스부르그에 가서 그가 살던 집을 방문하려 하였으나 시간이 늦어 후일을 도모하고 바젤에서 스위스의 수도 Bern(독일말로 ‘곰’)에 들려 베른 광장에서 피자 등으로 저녁을 먹고 베른 전경을 바라볼 수 있는 장미공원에 올라 유(u)자의 강이 감싸 돌고있는 도시 전경을 관람하였다. 마치 중세기의 교회들이 예배시간에 종을 치던 모습을 재현이라도 하듯이 저녁 7시가 되니 각 교회에서 경쟁이라도 하듯이 종 울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베른은 최근 중세기의 모습 그대로 가장 보존되어 있어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③ 제네바 한인교회

한인 약 300명이 살고있는 제네바에는 제네바 한인교회(담임목사 강연준 Tel&Fax:+41-(0)22-796-7544) 1개 밖에 없다.

매주일 평균 80명 전도가 참여하는 성도들 중에는 3분의 2가 일정한 임기를 가지고 근무하고 있는 제네바 대표부나 각급기관단체와 기업임원들이었다. 좀 특별한 것은 제네바 한인교회·한국의 통합측 교단과 제네바 개혁교회 3자 간에 협약이 되어있고 담임목사도 제네바 개혁교회가 제네바 한인교회와 협의하여 한국 통합 측 교단에 요청하고 사례비도 제네바 개혁교회 측에서 지급하는 형식으로 되어있다는 사실이다. 다소 보수성향을 가지고 있는 제네바의 영적 분위기 속에서 과연 이곳에서도 성시화운동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지 필요하다면 한국과 제네바 내지 스위스가 성시화 교류를 할 수 있는지가 관심사였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지난 7월 24일 주일 예배에서 강연준 담임목사의 설교내용은 영국의 크리스천 평균 연령이 61세. 스위스의 개혁교회는 사회복지에 역점을 두고 운영되고 있을 뿐 예수그리스도의 유일성과 이신득의의 교리는 거의 강조되지 않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16세기 유럽의 종교개혁을 선도했던 제네바나 스위스도 현재 칼빈의 개혁정신에 따라 성시화 개혁운동이 다시 일어나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④ 프랑스

4000미터 가량의 고지대로서 연중 내내 눈이 덮여있어 흰 산이라는 뜻의 프랑스 몽브랑(Mont Blanc)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산정에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관람하였다. 몽브랑은 1786년에야 사람들이 정상을 정복하였다는 안내문이 써있었다.


(2) 성시화교류 가능성 타진

① 권순철 참사관이 제네바 시장에게 춘천시의 교류희망의사를 전달하였는데 제네바 시청에서는 담당자가 연락이 와서 2011년 8월 4일(목요일) 10시 권 참사관이 제네바 시청을 방문하기로 하였음. 춘천시장의 의향서와 춘천시에서 준비한 자료를 전달하고 상호교류여부 및 방법 등을 의논하고 진행이 되면 제네바 시청과 춘천시청이 직접자료를 교환할 것으로 예상됨

② 한국과 제네바 개혁교회 간의 성시교류는 시간 관계상 강연준 목사에게 한국의 성시화운동의 개요와 그 것이 제네바의 성시화운동을 모델로 하고있다는 간단한 설명만 하였음.

그러나 제네바 한인교회가 그 곳에서 정착하고있는 평신도 중심으로 운영되고있는 시스템이라고 함으로 마침 제네바 한인교회 남선교회 회장 이정섭 집사가 저의 가족을 초청하여 만찬을 하고 교제하는 자리에서 준비하여 가지고 간 성시화운동개념, 중보기도자료 일체를 넘겨주고 함께 기도하기로 하였음.

이정섭 집사는 제네바 한인교회의 선교와 1:1제자양육 등 교육프로그램을 준비하고있고 권순철 집사가 하는 아버지 학교를 9월부터 개강하도록 지원하고있음.

이정섭 집사의 부인 김연수 집사도 매주 목요일 교회 7가정 정도가 정기적인 중보기도를 인도하고 있다고 하여 최호자 권사가 한국의 민들레 중보기도를 설명하고 적극적으로 기도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기로 하였음.

또한 주님의 뜻 가운데서 제네바 한인교회의 개척자인 김종철 집사 내외를 귀국할 때 제네바 공항에서 만났는데 그의 딸이 제네바 대학교에서 한국어과를 신설하고 한국어를 가르치는 강사라고 함. 제네바 대학은 원래 칼빈이 제네바 개혁의 핵심사업으로 1559년 6월 5일 제네바 아카데미를 설립하고 그 것이 제네바 대학으로 발전한 것으로 교회지도자와 국가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앞으로 한국의 성시화운동도 제네바 아카데미와 같이 성시화아카데미 같은 교육기관이 필요한데 관련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분들을 만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6. 방문결론

(1) 칼빈의 제네바 종교개혁의 3가지 핵심

① 교회의 개혁과 부흥

칼빈은 사회와 도시의 변혁의 전제가 되고 있는 교회의 개혁과 부흥은 예배의 개혁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창하였다. 종전의 보는 예배에서 듣는 예배로의 개혁을 단행했다. 시민을 위한 훈육교본, 어린이를 위한 교리문답은 유명하다.

② 신앙(말씀)과 생활의 일치

이를 위해 제네바 교회에 신앙과 생활이 일치하지 아니할 때 사법권은 아니지만 그를 권징하고 제네바 공동체에서 추방할 수 있는 컨시스토리라는 권징제도를 정착시켰다.

③ 제네바아카데미

칼빈은 1559년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교회지도자와 국가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한 제네바 아카데미를 설립하고 그가 평생배웠던 라틴어·그리스어·법학·수사학 등 인문학과 등 7과목을 채택함. 프랑스·독일·이태리·네덜란드 등 유럽전역으로부터 입교하고자하는 학생 지식인들이 쇄도하여 많은 지도자를 배출하고 칼빈의 개혁정신이 유럽과 전 세계로 확산될 수 있었음

④ 당시 칼빈의 구호는 ‘제네바로부터 시작하여 세상을 변화시켜라’였다. 이 구호는 마치 한국의 성시화운동이 ‘전 도시와 국가를 변화시키고 175개국 700만 한인디아스포라를 통해 온 세계를 복음화 하자’는 우리의 구호와 같다. 한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증거이다. 꺼져가고 있는 칼빈의 개신교 개혁정신을 한국에서 계승·발전시켜 한국교회와 사회를 살리고 유럽을 재복음화하게 되기를 하나님은 원하고 계심을 확신한다.

(2) 한국 영세중립국화의 꿈

동은 오스트리아 서는 프랑스 남은 이탈리아 북은 독일 등 강국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스위스는 고슴도치처럼 살아나고 도리어 ‘빈 국제회의’에서 영세중립국으로 결정되어 오늘날 전쟁을 모르고 세계 일류 복지 국가가 된 것은 중세와 근세 사이 격변기에 일어났던 종교개혁이 일조를 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아직도 남북이 분단된 채 전쟁의 위협 속에 있는 우리 조국 대한민국도 복음화와 성시화의 축복가운데서 스위스와 더욱 좋은 우호관계를 맺고 상호발전하고 전쟁이 없는 아시아의 영세중립국이 될 꿈을 꾸어본다.


2011. 8. 3. 전용태 장로
비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