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성시화운동본부, 애국지사 손양원 기념관 착공식 개최 (뉴스파워, 2014.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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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국지사 손양원 기념관 착공식 개최 | ||||||||||||||||||||||||
| 경남 함안 생가터 옆에 건립..이만열 이사장 "용서와 화해 상징 성지 되길" | ||||||||||||||||||||||||
“우리 민족을 살리자. 정계에 나간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를 이용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참다운 진실한 정치를 하자! 교육계에 나선 그리스도인들은 학생들에게 지식만 가르치지 말고, 지식의 근본인 여호와를 알려주자! 경제계에 나선 그리스도인들은 자기의 유익만을 구하지 말고 정직한 상도(商道)를 세우고 만민에게 편의를 주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손양원 목사, ‘순교자의 길’ 옥중서신 중)
사단법인 산돌손양원기념사업회(이사장 이만열 박사)와 국가보훈천, 경상남도, 함안군, 사단법인 경남성시화운동본부(대표회장 이종승 목사)는 23일 오전 11시 경남 함안군 칠원면 구성리 685번지 손양원 목사 생가터에서 애국지사 손양원 생가 복원 및 기념관 착공식을 가졌다. 착공식에 앞서 드린 착공감사예배는 정주채 목사(기념사업회 회장)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조우성 장로(경남도의회 의원, 마산제일교회)가 대표기도, 성악가 최대우 선생(대연중앙교회 찬양대 지휘자)이 손양원 목사가 즐겨 불렀다는 ‘주님 고대가’를 특송했다.
구동태 감독(산돌손양원목사 생가복원사업회 대표회장)의 축도로 예배를 마친 후 박시영 목사(기념관 건립본부 본부장)의 사회로 착공식이 진행됐다.
이 박사는 또 “손양원은 강점 말기 일제가 한국인의 정체성을 말살하려고 황국식민화정책을 강요할 때 분연히 일어나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5년간의 옥고를 치렀더.”며 “그의 신사참배 거부는 ‘천황’의 현인신(現人神)됨을 부정함으로 일본 국체에 도전했고, 민족 말살정책에 투쟁함으로 신앙적 차원을 뛰어넘는 독립투쟁적 성격에 포괄되고 있음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특히 “신사참배의 국가주의적 성격을 간파했던 손양원은 독립된 조국에서 국기경례 의식을 가슴에 손을 얹는 주목례로 바꾸는 데 공헌했다.”고 평가했다.
전외숙 국가보훈처 창원지청장도 축사를 통해“산돌 손양원 애국지사 생가 복원 및 기념관 건립으로 손양원 목사의 순교정신과 위대한 사랑, 그리고 거룩한 용서가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고 세대와 계층간 화합을 통해 국가 융성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손 권사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손양원 생가 복원 착공예배를 드리게 되어 먼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고 고백하고 이 일을 위해 수고한 칠원교회 최경진 목사와 성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칠원교회는 예장고신 소속으로 손양원 목사의 아버지 손종일 장로에 의해 설립된 교회로 손양원 목사는 7세때부터 주일학교에 출석했고, 16세에 호주 선교사 맹호은(J.F.L. Macrae)에게 세례를 받았다.
한편 애국지사 손양원 기념관 건립에는 국비 11억7,000만원, 도비 8억 6,000만원, 군비 29억 7,000만원, 기념사업회 2억원 등 총 52억원이 투입된다. 또한 경남성시화운동본부를 비롯한 경남 기독교계는 기념사업회와 함께 10억원 모금을 목표로 1구좌 1만원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다. 현재 2억원을 모금했다. 손양원기념관은 부지 3,655㎡에 생가(30㎡)와 전시장∙기록보관실∙기념품매장∙사무실 등을 갖춘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기념관(727.15㎡)으로 올 12월에 완공할 예정이다. 특히 방문객이 많이 올 경우 주차장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에 대해 하성식 함안군수는 "현재 칠원교회를 기념관 옆으로 옮기고, 그 교회 자리를 주차장으로 만들면 주차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밝혔다. 기념관을 방문하는 교인들에게 교회당이 산돌 손양원 목사의 순교신앙을 전수하는 데 유용한 공간으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손양원 목사는 1902년 6월 3일 출생, 1929년 경남성경학교를 졸업했고, 1938년 3월 16일 평양신학교 33회로 졸업했다. 특히 1939년 여수 애양원교회를 부임했으며 1940년 9월 25일 신사참배 거부로 여수경찰서에 검속돼 1940년 9월 25일 광주형무소에 투옥됐다가 8.15 해방으로 1945년 8월 17일 석방됐다. 1946년 2월 20일 경남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1948년 10월 21일 여순사건으로 동인, 동신 두 아들이 순교를 당하자 아들들을 죽인 학생을 양아들로 삼았다. 1950년 9월 28일 후퇴하는 인민군 잔당에 의해 여수 미평의 한 과수원에서 총살로 순교를 당했다. 손양원 목사의 순교 언덕에는 현재 여수 새중앙교회가 들어서 있다. 1995년 8월 15일 정부로부터 국가독립유공자로 추서돼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2005년 9월 25일에는 원수사랑상을 수상했고, 2014년 2월 6일 중동고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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