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이 기적을 만든다" (뉴스파워 2015.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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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철원군은 인구 5만 정도의 한수이북에 위치한 곳이다. 일제시대 때는 백화점과 극장이 있었을 정도로 잘 사는 곳이었던 이곳은 일제시대와 6.25의 아픔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는 일제 신사참배에 반대하다 옥에 갇혀 모진 고문 끝에 순교한 주기철 목사를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이곳 철원제일교회를 목회했던 강종근 목사도 신사참배에 반대해 옥중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다 순교를 하면서 “일본을 용서하라”고 교인들에게 당부하고 순교를 했다.
강 목사는 주기철 목사보다 1년 앞선 1942년 6월 3일 옥중 순교했다. 그러니까, 신사참배 반대로 순교한 최초의 목회자는 주기철 목사가 아닌 강종근 목사라는 것이다. 이런 사실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감리교 본부 차원에서 철원제일교회 복원작업과 함께 이상욱 목사가 담임목사로 부임하여 철원제일교회의 역사와 강 목사의 사료를 발굴하여 이런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철원군은 1945년 3.8선으로 분단될 때 북한에 속해 있었다. 김일성은 1946년부터 48년까지 3년 간 소련의 기술 공법으로 노동당사를 지었다고 한다. 그만큼 철원을 중요하게 여겼다고 한다. 이곳에 인접한 고함산에서 6.25전쟁을 직접 지휘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빼앗겼고, 김일성은 3일간이나 울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는 말도 전해지고 있다.
궁예가 이곳을 도읍지로 삼았었고, 우리나라 쌀 생산량의 27퍼센트를 담당할 정도로 비옥한 평야의 땅 철원군, 철원제일교회는 1930년대에도 600명의 교인들이 출석했을 정도로 한구 감리교회 중 5대 교회에 들 정도로 규모가 컸다고 한다.
특히 1903년 원산 회개운동의 주역인 하디 선교사가 이곳에 궁탄교회를 개척하고 사역했을 만큼 감리교로서는 상징성이 있는 지역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1905년에 미국 장로교 선교사에 의해 철원제일교회가 개척 설립이 되었는데, 당시 교파별 지역 분할 선교정책에 의해 2년 뒤 장로교에서 감리교로 옮겼다는 것이다. 서로 경쟁하지 않고, 오직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를 위해 힘썼던 모습을 떠올리면 숙연한 마음이 든다.
철원제일교회는 매주 목요일 오전 11시부터 통일기도회를 갖고 있다. 30~40명이 참여하고 있고, 기도회가 마치면 통일국수를 먹는다고 한다. 또한 기독음대 의정부캠퍼스의 분교 형식으로 기독음대 사역이 시작되었다. 기독실업인회(CBMC)철원군 지부도 활동을 하고 있다.
철원군에는 감리교회가 45개 있고, 다른 교파들의 교회들을 포함하면 60여개가 있다. 이단교회들도 침투해서 포교활동을 벌이고 있다.
최근 철원군 복음화를 위한 조용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철원만나교회 오태현 담임목사가 3년 전 부임해서 철원군을 위한 구체적인 기도를 교인들과 함께 시작한 것이다. 오 목사는 한국 감리교 최초의 선교사 아펜젤러가 설립한 인천 내리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하면서 성시화운동 사역에 참여했다. 2009년 10월에 열린 인천국제성시축전의 행정국장으로 섬겼고, 인천 도시전도를 경험했다.
그런 그가 분당 만나교회로 사역지를 옮겨 사역하다가 3년 전 철원만나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해서 교회를 건강하게 세워가면서 철원군의 지리적, 역사적, 민족사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통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전진기지, 통일 후 북한 선교의 거점 지역이 되기를 바라면서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오 목사는 철원에서 성시화운동 사역이 전개되어 교회마다 부흥하고, 군민마다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기를 기대하고 기도해오고 있다. 오 목사는 4일 저녁 수요예배에 세계성시화운동본부 공동총재 전용태 장로를 초청해 ‘성시화 간증 집회’를 열었다.
오 목사는 내리교회에서 사역할 때 매주 금요일마다 세계성시화운동본부 기도팀에서 내리교회에서 성시월요조찬기도회를 할 때부터 전용태 장로와 교제를 가져왔다. 이날 간증집회에는 세계성시화운동본부 사무총장 김철영 목사와 민들레기도팀장 최호자 권사, 기독음대 학장 오진태 학장과 철원CBMC 회원들도 참석했다.
간증에 앞서 김철영 목사는 성시화운동을 소개했다. 김 목사는 “성시화운동은 전교회가 전복음을 전시민에게 전하여 행복한 시민, 건강한 가정, 깨끗한 도시를 만들고, 부흥하는 교회를 만드는 운동”이라며 “철원군에 있는 교회들 복음의 열정으로 하나되어 복음전도를 위해 헌신한다면 철원군의 영적인 기상도가 바뀔 것”이라고 격려했다.
이어 전용태 장로는 '고난이 결단을, 결단이 기적을'이라는 제목으로 신앙간증을 전했다. 전 장로는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성공은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닮아가는 것"이라며 "베드로전서 1장 16절 말씀처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씀처럼 겸손하고 온유하고 오래 참는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복음전도를 강조했다. "예수님을 닮지 않고는 전도할 수 없다."며 "우리가 살고 있는 가정과 직장, 지역에서 기도하면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도전했다.
전 장로는 "1969년부터 교회를 출석했고, 1972년 7월 31일부터 8월 4일까지 춘천성시화운동 전도대회에 참석했다,"며 "그러나 검사 생활을 하면서 주일에는 교회를 나가고, 평일에는 예수 믿지 않는 사람처럼 생활을 했다. 그렇게 18년을 살았다. 아내는 저를 위해 눈물로 기도했다."고 고백했다.
전 장로는 "그런데 아내가 난소암에 걸렸다. 아내가 병상에서 시편 108편 1절 말씀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라는 말씀을 붙잡고 '주일성수', '성경공부', '전도' 등 세가지를 약속하자고 해서 결단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1987년 6월, 그 병상이 저의 다메섹도상이 되었다."며 "그렇게 심한 고통을 겪으면서 술과 담배도 끊어졌다. 하나님이 다루시는 고통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면 고난은 변장된 축복이 된다는 것을 경험했다."고 고백했다.
"결심이 기적을 만든다."고 고백한 전 장로는 이후 1991년 춘천지검 차장검사로 부임하면서 본격적인 성시화운동에 헌신했다. 매주 목요일 저녁에는 관사에서 기관단체장들을 초청해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그 당시 천주교 신자였던 김기수 검사장도 성경공부에 참여할 정도로 성경공부 열기는 뜨거웠다. 동시에 전도를 생활화했다. 2년만에 400명을 전도해서 교회로 인도했다고 밝혔다.
전 장로는 이후 춘천지검, 청주지검, 인천지검, 대구지검 검사장으로 부임할 때마다 지도자 성경공부와 전도 실천을 하면서 성시화운동을 확산시켰다. 퇴직 후에는 법무법인 로고스를 설립해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성시화운동을 이끌어왔다.
전 장로는 "우리 사회가 동성애 등 어려 문제들이 있지만, 예수님만이 희망"이라며 "철원에 복음의 장미꽃이 피게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전도를 해야 한다. 교인 한 사람당 10명을 전도하면 100명 교회는 1000명 교회가 되고, 200명 교회는 2000명 교회가 된다. 이런 꿈을 안고 기도하고 전도하면 반드시 이루어 주신다."고 도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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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목사는 주기철 목사보다 1년 앞선 1942년 6월 3일 옥중 순교했다. 그러니까, 신사참배 반대로 순교한 최초의 목회자는 주기철 목사가 아닌 강종근 목사라는 것이다. 이런 사실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감리교 본부 차원에서 철원제일교회 복원작업과 함께 이상욱 목사가 담임목사로 부임하여 철원제일교회의 역사와 강 목사의 사료를 발굴하여 이런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철원군은 1945년 3.8선으로 분단될 때 북한에 속해 있었다. 김일성은 1946년부터 48년까지 3년 간 소련의 기술 공법으로 노동당사를 지었다고 한다. 그만큼 철원을 중요하게 여겼다고 한다. 이곳에 인접한 고함산에서 6.25전쟁을 직접 지휘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빼앗겼고, 김일성은 3일간이나 울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는 말도 전해지고 있다.
궁예가 이곳을 도읍지로 삼았었고, 우리나라 쌀 생산량의 27퍼센트를 담당할 정도로 비옥한 평야의 땅 철원군, 철원제일교회는 1930년대에도 600명의 교인들이 출석했을 정도로 한구 감리교회 중 5대 교회에 들 정도로 규모가 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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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1903년 원산 회개운동의 주역인 하디 선교사가 이곳에 궁탄교회를 개척하고 사역했을 만큼 감리교로서는 상징성이 있는 지역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1905년에 미국 장로교 선교사에 의해 철원제일교회가 개척 설립이 되었는데, 당시 교파별 지역 분할 선교정책에 의해 2년 뒤 장로교에서 감리교로 옮겼다는 것이다. 서로 경쟁하지 않고, 오직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를 위해 힘썼던 모습을 떠올리면 숙연한 마음이 든다.
철원제일교회는 매주 목요일 오전 11시부터 통일기도회를 갖고 있다. 30~40명이 참여하고 있고, 기도회가 마치면 통일국수를 먹는다고 한다. 또한 기독음대 의정부캠퍼스의 분교 형식으로 기독음대 사역이 시작되었다. 기독실업인회(CBMC)철원군 지부도 활동을 하고 있다.
철원군에는 감리교회가 45개 있고, 다른 교파들의 교회들을 포함하면 60여개가 있다. 이단교회들도 침투해서 포교활동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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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가 분당 만나교회로 사역지를 옮겨 사역하다가 3년 전 철원만나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해서 교회를 건강하게 세워가면서 철원군의 지리적, 역사적, 민족사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통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전진기지, 통일 후 북한 선교의 거점 지역이 되기를 바라면서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오 목사는 철원에서 성시화운동 사역이 전개되어 교회마다 부흥하고, 군민마다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기를 기대하고 기도해오고 있다. 오 목사는 4일 저녁 수요예배에 세계성시화운동본부 공동총재 전용태 장로를 초청해 ‘성시화 간증 집회’를 열었다.
오 목사는 내리교회에서 사역할 때 매주 금요일마다 세계성시화운동본부 기도팀에서 내리교회에서 성시월요조찬기도회를 할 때부터 전용태 장로와 교제를 가져왔다. 이날 간증집회에는 세계성시화운동본부 사무총장 김철영 목사와 민들레기도팀장 최호자 권사, 기독음대 학장 오진태 학장과 철원CBMC 회원들도 참석했다.
간증에 앞서 김철영 목사는 성시화운동을 소개했다. 김 목사는 “성시화운동은 전교회가 전복음을 전시민에게 전하여 행복한 시민, 건강한 가정, 깨끗한 도시를 만들고, 부흥하는 교회를 만드는 운동”이라며 “철원군에 있는 교회들 복음의 열정으로 하나되어 복음전도를 위해 헌신한다면 철원군의 영적인 기상도가 바뀔 것”이라고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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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전용태 장로는 '고난이 결단을, 결단이 기적을'이라는 제목으로 신앙간증을 전했다. 전 장로는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성공은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닮아가는 것"이라며 "베드로전서 1장 16절 말씀처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씀처럼 겸손하고 온유하고 오래 참는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복음전도를 강조했다. "예수님을 닮지 않고는 전도할 수 없다."며 "우리가 살고 있는 가정과 직장, 지역에서 기도하면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도전했다.
전 장로는 "1969년부터 교회를 출석했고, 1972년 7월 31일부터 8월 4일까지 춘천성시화운동 전도대회에 참석했다,"며 "그러나 검사 생활을 하면서 주일에는 교회를 나가고, 평일에는 예수 믿지 않는 사람처럼 생활을 했다. 그렇게 18년을 살았다. 아내는 저를 위해 눈물로 기도했다."고 고백했다.
전 장로는 "그런데 아내가 난소암에 걸렸다. 아내가 병상에서 시편 108편 1절 말씀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라는 말씀을 붙잡고 '주일성수', '성경공부', '전도' 등 세가지를 약속하자고 해서 결단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1987년 6월, 그 병상이 저의 다메섹도상이 되었다."며 "그렇게 심한 고통을 겪으면서 술과 담배도 끊어졌다. 하나님이 다루시는 고통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면 고난은 변장된 축복이 된다는 것을 경험했다."고 고백했다.
"결심이 기적을 만든다."고 고백한 전 장로는 이후 1991년 춘천지검 차장검사로 부임하면서 본격적인 성시화운동에 헌신했다. 매주 목요일 저녁에는 관사에서 기관단체장들을 초청해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그 당시 천주교 신자였던 김기수 검사장도 성경공부에 참여할 정도로 성경공부 열기는 뜨거웠다. 동시에 전도를 생활화했다. 2년만에 400명을 전도해서 교회로 인도했다고 밝혔다.
전 장로는 이후 춘천지검, 청주지검, 인천지검, 대구지검 검사장으로 부임할 때마다 지도자 성경공부와 전도 실천을 하면서 성시화운동을 확산시켰다. 퇴직 후에는 법무법인 로고스를 설립해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성시화운동을 이끌어왔다.
전 장로는 "우리 사회가 동성애 등 어려 문제들이 있지만, 예수님만이 희망"이라며 "철원에 복음의 장미꽃이 피게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전도를 해야 한다. 교인 한 사람당 10명을 전도하면 100명 교회는 1000명 교회가 되고, 200명 교회는 2000명 교회가 된다. 이런 꿈을 안고 기도하고 전도하면 반드시 이루어 주신다."고 도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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