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곤 목사 묘소에 『예수칼럼』 비치 (2016. 05. 14) > 신문보도

언론보도

신문보도


김준곤 목사 묘소에 『예수칼럼』 비치 (2016. 05. 14)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WHCM (203.♡.136.5)
댓글 0건 조회 703회 작성일 16-05-16 14:36

본문

민족의 가슴마다 피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

197012310시 기독교방송(CBS)을 통해 민족복음화운동을 선언하고 엑스플로 ‘74대회 등 한국 교회 부흥을 주도했던 유성 김준곤 목사(1925.3.28.-2009.9.29.). 유성은 1958년 한국대학생선교회(CCC)를 창설해 평생을 대학생선교를 통한 민족의 입체적 복음화와 세계선교를 위해 일평생을 바쳤다.

 

1965227일 김종필(전 국무총리), 박현숙, 김영삼, 정일형 등 여야 기독 국회의원 20여명을 모아 국회조찬기도회를 시작했고, 이듬해인 196638일 대통령 국회조찬기도회를 시작했고, 1969년 전군신자화운동을 전개했던 유성 김준곤 목사는 197012310시 기독교방송(CBS)을 통해 민족복음화운동을 선언하고 민족복음화 지도자요원 강습회(1971.1), 대전 충무체육관 1만명 전도훈련(1971.8), 춘천성시화운동 전도대회(1972.7)에 이어 1974813일부터 18일까지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엑스플로 ‘74대회를 개최해 한국 교회 부흥의 기폭제를 만들었다.

 

엑스플로 ‘74대회 당시 한국기독교 신자는 280만 명에서 300만 명으로 추산되던 때였다. 엑스플로 ’74대회에는 323419명이 등록해 56일 동안 낮에는 전도훈련을 받고 오후에는 둘씩 짝을 지어 서울 시내에서 전도를 했다. 당시 하루에만 22만명의 서울시민이 결신했다는 기록이 있다. 저녁에는 모여서 말씀을 듣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한국 교회 부흥을 위해 부르짖었다.

 

엑스플로 ‘74대회 후 참석자들은 전국 59천 자연부락으로 흩어져 복음을 전했다. 1년 후 조사에 의하면 한국 교회는 110만 명이 증가했다. 이는 하루 평균 3,000여명이 예수를 믿었다는 것이다. 당시 교회는 하루에 6개씩 설립됐다고 한다.

 

19808월에는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80세계복음화대성회를 개최해 10만 선교사 헌신서약을 받아냈다. 당시 한국 선교사는 100명이 되지 않은 때였다. 해외 여행도 쉽지 않은 때였다. 그러나 그 후 한국 선교사 파송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특히 19907월과 8월에는 필리핀 마닐라에 한국CCC 대학생 3,000여명을 파송해 단기선교사역을 실시했고, 이듬해부터는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로 매년 여름과 겨울에 단기선교사를 파송하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한국 교회 단기선교 시대가 열렸다.

 

유성 김준곤 목사는 1980년과 1981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예수칼럼>을 매일 연재했다. 한국 최대의 일간신문에 매일 예수라는 타이틀이 붙은 칼럼이 연재됐다는 것은 파격적인 일이었다.

 

<예수칼럼>은 유성 김준곤 목사의 깊은 영성과 뛰어난 문학적 감성과 접속사가 없는 간결하고 집약적인 문체로 독자들의 큰 호응을 얻으면서 파스칼의 <팡세>에 비견할만한 현대적 기독교 고전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1958년 한국대학생선교를 창설하고 50년 동안 30만 명의 지도자를 키워낸 '영원한 청년' 유성 김준곤 목사. 그의 제자들은 민족 구석구석에서, 세계선교 현장에서 평생 연한 순처럼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을 꿈꾸면서 살아가고 있다.

▲ 유성 김준곤 목사의 묘소에 『예수칼럼』을 비치한 함     © 뉴스파워

 

한국CCC(대표 박성민 목사)가 스승의 날을 이틀 앞둔 지난 13일 강원도 춘천시 서면 안보리 산 90-21번지 경춘공원묘원에 있는 유성 김준곤 목사의 묘소에 예수칼럼을 비치한 함을 설치했다. 함에는 예수칼럼외에도 유성 김준곤 목사의 삶과 사역을 담은 사진으로 정리한 화보집과 방문객 들이 가져갈 수 있도록 민족복음화 기도문이 담겨 있는 엽서를 비치했다.

 

한국CCC 대표 박성민 목사는 "김 목사님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조용하게 묘소를 찾는 이들에게 예수칼럼을 읽으면서 예수님과의 처음사랑을 회복하고, 젊은 날에 품었던 민족 복음화에 대한 비전을 품고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것"이라고 말했다.

 

 예수칼럼』을 비치한 함 옆에는 우체통 모양의 엽서함을 설치했다. 유성 김준곤 목사의 캐리커쳐가 그려진 엽서도 제작해 비치했다. 그 엽서에 자신의 마음을 담은 글인 기도제목을 써서 엽서함에 넣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한국CCC는 정기적으로 엽서를 수합해 보관할 계획이다.

 

 이날  설치 작업에는 이관우 목사(CCC 통일연구소 소장), 안장열 목사(춘천CCC 대표), 김철영 목사(세계성시화운동본부 사무총장), 이은평 간사(CCC 민족복음화전략센터), 박민수 간사(CCC 운영관리부) 등이 참여했다.

 

안장열 목사(춘천CCC 대표)“CCC 대학생들이 순여행이나 리트릿 때 CCC 본부에 있는 CCC 역사 및 비전센터와 이곳 묘소를 들러 CCC의 역사를 배우고, 하나님께서 김준곤 목사님을 통해 주셨던 비전을 듣고 기도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관우 목사는 목사님께서 평생 기도하시면서 이루고자 하셨던 남북통일에 대한 꿈을 계속 실천해 가기를 다짐한다.”고 말했다.

 

김철영 목사는 민족복음화운동의 선구자요 한국 교회가 낳은 세계적인 복음전도자 김준곤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셨던 사역을 잘 정리하고, 역사적 현장을 한국 기독교의 문화유산으로 만들어 갈 것이라고 밝혔다.

▲ 유성 김준곤 목사의 묘소에 설치한 우체통 모양의 엽서함     ©뉴스파워

 

한국CCC와 유성김준곤기념사업회는 지난 2010년 10월 서울 종로구 부암동 CCC 본부 입구 건물 1층과 2층에 <CCC 역사 및 기념관>을 개관하면서 1층에 김준곤 목사 기념관으로 꾸몄다. 지난해 10월 열린 제5주기에는 김 목사의 제자들인 두상달 장로(한국CBMC 회장), 주수일 장로(진새골가정문화원 이사장), 전용태 장로(세계성시화운동본부 공동총재)의 후원으로 기념관 입구에 '민족복음화의 환상과 기도문' 기념비를 제막했다.

 

'민족복음화의 환상과 기도문은 김 목사가 1962년 2월 6일부터 9일까지 서울 은평구 불광동 기독교수양관(TIM 수양관)에서 간사수련회를 마치고 마지막 날 평소 다녔던 삼각산 민족기도원(김 목사의 장로회신학교 동기 박요한 목사, 전 예장합동 총회장의 누님 박애린 권사가 운영했던 움막으로 된 기도원이다.)에서 기도하면서 복음화 될 민족의 비전을 담은 내용이다.

 

유성김준곤기념사업회는 매년 추모식 때 학생들을 선발해 유성김준곤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유성김준곤목사의  사역을 조명하는 포럼을 개최해 오고 있다.

 

특히 전남 신안군 지도읍 봉리에 있는 생가를 중심으로 현지에 선교기념관 건립을 추진할 계획이다.  생가에서 30 분 거리에는 김 목사에게 신앙적 영향을 끼쳤던 낙도의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의 순교기념관이 있고, 역시 김 목사에게 신앙적 영향을 주었던 20세기 사랑의 원자턴 손양원 목사의 순교기념관이 있는 여수 애양원이 한 시간 거리에 있다.

 

또한 호남 선교를 담당했던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지리산 노고단 선교유적, 광주 양림동 남장로교 선교 유적지, 순천 선교유적지 등도 한 시간 거리에 있다. 따라서 이들 기념관과 선교 유적지 등과 연계해 호남 선교 벨트를 만들어 한국 교회는 물론 전세계가 찾는 한국 기독교 선교 역사의 현장으로 만들어갈 계획이다.

▲ 유성 김준곤 목사의 묘소에 『예수칼럼』을 비치한 함 앞에서 안장열, 이관우, 김철영 목사(좌측부터)     © 뉴스파워

  

한편 독일의 에어푸르트라는 곳에 슈토테른하임(슈톤텐하임)이라는 작은 시골마을이 있다. 그 곳에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150572일 친구 알렉시우스와 함께 들판을 걷다 갑자기 쏟아진 폭우와 함께 천둥 번개 로 친구가 벼락에 맞아 죽는 사건을 목격했다. 두려움에 떨던 루터는 성 안나에게 자신을 살려주면 수도사가 되겠다고 서원기도를 했다고 알려진 곳이다.

 

500여 년이 가까운 지금, 그곳에는 다음과 같은 기념비가 하나 세워져 있다.

 

거룩한 땅

종교개혁의 전환점

 

하늘에서 이곳에 떨어진 번개가 젊은 루터에게 그 길을 보여주었다

 

2. Juli. 1505

 

150572

도우소서, 성 안나여, 내가 수도사가 되겠나이다”  

▲ 벼락사건으로 수도사가 되겠다고 서원한 루터 기념비     ©뉴스파워 김현배

 

슈토테른하임만이 아니다. 마르틴 루터와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표지판과 기록물, 유적을 보존해 놓았다. 역사 기록과 역사적 현장의 보존 또는 기념을 중요하게 여긴 것이다. 유럽의 교회들, 심지어는 동구 공산권이었던 나라의 도시에도 기독교 유적과 역사적 현장을 기념하는 표지석을 해놓았다.

 

유성 김준곤 목사를 통해 일하셨던 하나님의 일하심의 기록과 역사적 현장을 보존하는 일은 먼 훗날 한국 교회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세계 최대의 크리스천 대학생들을 배출했고, 민족 전체의 복음화를 꿈꿨던 유성 김준곤 목사의 역사적 현장을 탐방하러 올 것이다.

▲ 한 방문자가 엽서에 글을 써서 엽서함에 넣고 있다.     © 뉴스파워

 

▲ 엽서함에 엽서를 넣고 있는 이관우 목사     © 뉴스파워


 

▲ 이은평 간사가 <예수칼럼>을 비치한 함에서 엽서에 글을 쓰고 있다.     © 뉴스파워



 

▲ 함 설치작업을 하고 있는 이은평, 박민수 간사     © 뉴스파워

 

▲ 유성 김준곤 목사 묘소에서 기도하는 김철영 목사     © 뉴스파워
▲ 안장열 목사가 엽서함에 엽서를 넣고 있다.     © 뉴스파워

 

▲ 유성 김준곤 목사의 캐리커쳐가 그려진 엽서     © 뉴스파워
▲ 제자들은 이날 스승의 사랑과 가르침을 기리며 국화바구니를 묘소에 놓아드렸다.     © 뉴스파워
▲ 유성 김준곤 목사 묘소에서 바라보이는 산...푸르른 신록이다. 푸르른 그리스도의 계절을 꿈꾸듯     © 뉴스파워





비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