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봉 목사에게 12번 안수기도 받아" (2) (뉴스파워 2018. 11. 16. 14:45) > 신문보도

언론보도

신문보도


"이성봉 목사에게 12번 안수기도 받아" (2) (뉴스파워 2018. 11. 16. 14:45)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WHCM (14.♡.23.63)
댓글 0건 조회 587회 작성일 18-11-16 14:45

본문

- "이성봉 목사에게 12번 안수기도 받아" (1)에 이어서 -
 
셋째로, 이성봉 목사님의 삶은 현세를 초월한 깨끗한 성결과 청빈의 삶이었습니다. 이성봉 목사님은 청년 시절부터 아니 평생토록 철저한 회개에 기초를 둔 성결청빈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자신이나 세상에 대한 어떤 애착을 두지 않고 살았습니다. 이성의 정욕과 물질의 탐욕을 항상 경계하는 금욕적 성결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성봉 목사님께서는 부흥회를 인도하실 때마다 사례비를 적지 않게 받으시곤 했지만 그 사례비를 자기 개인이나 가족을 위해서 사용하시는 일이 거의 없었고 대부분 작은 교회들과 어려움에 처한 교회들을 위해서 사용하셨습니다. 결국 사모님과 세 명의 딸들은 가난한 살림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성봉 목사님께서는 친히 거지와 같은 청빈의 삶을 평생토록 사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다 하고 싶지만 시간에 없어서 하지 못합니다. 이성봉 목사님은 돈과 이성의 유혹에 빠지면 목회자의 삶은 끝장이란 말을 거듭해서 강조했습니다.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거듭해서 경고했습니다. 따라서 그에게는 일종의 염세주의 또는 허무주의적 정서가 나타나 있었습니다.
 
이성봉 목사님은 부흥회 때마다 허사가를 즐겨 부르곤 했습니다. “꿈결 같은 이 세상에 산다면 늘 살까 일생의 향락 좋대도 바람을 잡누나 험한 세월 고난 풍파 일장춘몽이 아닌가 슬프도다 인생들아 어디로 달려가느냐” “세상만사 살피니 참 헛되구나 부귀영화 장수는 무엇하리요 고대광실 높은 집 문전옥답도 우리 한번 죽으면 일장의 춘몽.” 그래서 어떤 교수는 이성봉 목사님은 성경과 복음으로 시작해서 허무주의로 마감하는 느낌이다라고 혹평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성봉 목사님의 허무주의적 정서를 비판적으로만 보지 않고 긍정적으로 너무너무 귀중하게 보고 싶습니다.
 
사실 기독교 신앙은 현세 부정을 통한 내세 긍정적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현세 부정적 요소가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1:2).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4:7-8). 이성봉 목사님의 신앙과 설교에 일종의 염세주의 또는 허무주의적 정서가 나타나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현실 교회와 사회에 대해 무책임한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사실 이성봉 목사님은 세상에 대한 애착을 부정한 것이지 세상 안에서의 믿음의 삶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말로는 문화변혁주의적 개혁주의 신학이나 순교적 신앙을 주창하면서도 실제로는 세상과 돈과 명예를 너무 좋아하는 세속주의에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는 현대교회 목회자들의 삶의 동향에 비추어 볼 때 이성봉 목사님의 허무주의적 정서가 깃들어 있는 현세 초월적” “청빈의 삶은 우리들에게 심각한 도전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넷째로, 이성봉 목사님의 신앙은 재림의 복음 신앙 이었습니다. 이성봉 목사님은 다시 오시는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재림 신앙을 가지고 한 평생을 살았습니다. 이성봉 목사님은 밤에 자다가 옆 집 방앗간에서 방아 찢는 소리만 들어도 주님이 오시지 않나 하고 밖으로 나가서 하늘을 쳐다보곤 했다는 간증을 저는 중학생 때 여러 번 들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도 비슷한 고백을 하셨습니다. "먼 하늘 이상한 구름만 떠도, 행여나 내 주님 오시는가 해 주님 계신 그 곳에 가고 싶어요.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이 세상은 잠깐 지나는 허무한 과정이기 때문에 우리는 분명한 재림 신앙을 가져야 하며, 재림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무상하고 허무한 이 세상에서 성결하게 청빈하게 살아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성봉 목사님에게 있어서 재림은 구원의 셋째 단계 즉 미래적 단계였고 재림은 기독교 신앙의 목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하나님의 최대 계획이요, 성도의 최대 소망입니다. 만물이 고대하는 소망이요 마귀를 진멸하고 세상을 심판하고 성도의 눈물을 씻어 주시고 당신의 신부들을 영접하시는 주님의 날입니다.” 그리고 재림의 날이 임박했음을 지적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깨어서 재림을 준비하여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깨어라.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 밝게 켜 들고 거룩함과 인애로 신 혼 신을 단장하고 공중 혼연을 고대하는 신부들은 복이 있으리라.” “사랑하는 나의 주님 언제나 오시렵니까? 택한 신부 맞으시려 언제나 오시렵니까? 일구월심 오래도록 주님 생각 간절합니다 사모하는 나의 주님 속속히 오시옵소서.” 언제부터인가 우리들에게서 종말신앙과 재림신앙이 점점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현세가 전부인 것처럼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몰트만 박사가 지적한 대로 미래에 대한 분명한 종말 신앙은 적극적이고 책임 있는 현재적 삶을 살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성봉 목사님의 재림신앙은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 둔탁해진 우리들의 신앙을 일깨우는 청량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인 저에게 이성봉 목사님과 같은 귀중한 부흥사 목사님을 저의 신앙의 스승으로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비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