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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봉 목사, 회개와 재림 강조했다" (1) (뉴스파워 2018. 11. 16.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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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WHCM (14.♡.23.63)
댓글 0건 조회 586회 작성일 18-11-16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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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봉 목사, 회개와 재림 강조했다"
김명혁 목사(강변교회)·박명수 교수(서울신대), 이성봉 목사 주제 대담
          
김명혁 목사(전 합동신학교 교장, 강변교회 원로목사)와 서울신대 박명수 교수(교회사)가 한국의 무디로 불리웠던 부흥사 이성봉 목사(1900~1965)의 신앙과 삶에 대해 특별대담을 가졌다.

김 목사와 박 교수는 지난 15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강변교회(담임목사 이수환)에서 이성봉 목사의 회개와 은혜 사모와 성결과 재림의 영성을 염원하며를 주제로 한 21TV와의 특별대담에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성봉 목사의 신앙과 사역을 소개했다. 대담 진행은 김철영 목사(세계성시화운동본부 사무총장, 뉴스파워 대표)가 맡았다.
 
김명혁 목사는 저는 중학생 시절인 1951년부터 1953년까지 대구에서 피난 생활을 했는데 이성봉 목사님께서 서너 달에 한 번씩 이 교회 저 교회에서 인도하시는 부흥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면서 큰 은혜를 받곤 했는데 아마 12번은 참석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분의 설교는 특히 천로역정 이야기는 중학생인 저에게 너무 재미가 있었고 너무 감동적이었고 너무 은혜로웠다.”저는 늘 앞자리에 앉아서 이성봉 목사님의 말씀을 듣곤 했는데, 부흥회 도중에 이성봉 목사님께서 찾아서 읽으라는 성경 구절을 미리 암송했다가 성경을 찾지도 않고 즉시 암송하므로 이성봉 목사님의 칭찬을 받곤 했다. 그때 이성봉 목사님께서 자주 찾아서 읽으라고 하시던 말씀 중에는 시 50:15, 37:4-6, 81:10, 33:3 등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아마 12번 정도 이성봉 목사님으로부터 안수기도를 받은 것 같은데 얼마나 큰 은혜와 축복인지 모른다.”저는 죄인 중의 괴수이지만 아직까지 목사로 사역하고 있는 것은 이성봉 목사님께서 안수 기도를 해주신 사랑과 은혜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이성봉 목사의 삶을 은혜 체험적 삶 구령과 교회부흥에 헌신한 삶 현세를 초월한 깨끗한 청빈의 삶이고, 이성봉 목사의 신앙은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 예수 중심주의 신앙 회개와 중생의 복음 신앙 성결의 복음 신앙과 신유의 복음 신앙 재림의 복음 신앙 등이라고 정리했다.
▲ 김명혁 목사     ©뉴스파워
 김 목사는 특히 이성봉 목사님은 196582일 주님 품으로 돌아가시기 까지 37년 동안 한국과 만주와 일본과 미국 등지에서 수많은 부흥회를 인도하는 동안 자기 스스로 수많은 영적 체험을 계속하며 기사와 이적을 동반하는 회개와 부흥의 역사를 많이 일으켰다.”그러나 신비주의는 항상 경계했습니다. 가슴은 뜨거워야 하지만 머리까지 뜨거워지면 안 된다고 항상 경고했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이성봉 목사의 신앙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사모하는 재림신앙이었다며 재림 신앙은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 둔탁해진 우리들의 신앙을 일깨우는 청량제가 된다.”고 말했다.
 
박명수 교수는 그동안 한국교회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일화를 소개했다. 그것은 바로 이성봉 목사가 재림의 복음을 설교했다는 이유로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조사를 받고 6개월 만에 기소유예를 받았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이성봉 목사는 1937년 성결교회 총회로부터 전국순회부흥사로 임명을 받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집회를 인도하면서 회개운동을 일으켰다.”이 목사의 회개 외침에 진정으로 응답했다. 당시 한국 여성들의 가장 큰 문제는 축첩이었다. 이 목사의 집회에는 많은 첩들이 나오게 되었고, 이들은 복음을 받아들이자 첩 생활을 청산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 목사의 설교를 듣고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 자백을 하고 회개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일제말 이성봉 목사가 평양의 3개 노회(평양, 강서, 안주) 연합집회를 인도한 경험이 있다. 이 집회에 참석한 최경자라는 신자가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평양경찰서에 찾아가서 살인죄를 회개했다.”이 여인은 결혼을 해서 아이 셋을 나았는데, 얼마가지 않아서 남편이 죽고, 곧 이어서 아들이 죽고, 딸 둘만 남았다. 이 두 딸을 데리고 친정에 갔으나 부모는 이혼했고, 어머니는 어머니에게 갔으나 박대를 당하자 결국 작은 딸을 죽여버리고 큰 딸과 같이 동해바다에서 자살하려고 하다가 어머니 살자는 딸의 말을 듣고 포기하고 돌아와 선교사집에서 식모생활을 하다가 이 목사의 집회에 참석해 큰 은혜를 받고 죄를 자백했다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경찰이 조사를 해보니 사실이었다. 그러나 정상을 참작한 경찰이 이 여인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그 후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했다.”고 밝혔다.
▲ 박명수 교수     ©뉴스파워
 박 교수는 이성봉 목사의 회개의 특징으로 인간 본성의 타락을 믿음 구체적인 자범죄 지적 자백 강조 자백에는 변상, 곧 회개의 열매 강조 변상은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끼침회개운동은 신유운동으로 이어짐 회개운동은 종말론적 차원에서 이해 등으로 분석했다.
 
박 교수는 이성봉 목사는 항상 그리스도의 재림의 빛 아래서 매일매일 살았다.”재림의 복음은 자신을 살펴보게 만들고 다시 오시는 신랑되신 그리스도 앞에서 순결하게 서기 위한 몸부림이 바로 회개였던 것이라고 밝혔다.
 
박 교수는 여의도순복음교회 공동설립자 최자실 목사가 이성봉 목사를 신앙의 아버지로 여겼다. 최 목사는 이성봉 목사가 인도하는 삼각산 기도원 집회에서 은혜를 받고 철저하게 회개하고 놀라운 성령의 은혜를 체험했다.”영적으로 본다면 이성봉, 최자실 그리고 조용기로 이어지는 것이다. 조용기 목사는 최자실의 사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성봉 목사의 회개운동은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1907년 대부흥운동의 특징은 회개와 자백과 변상이었다. 이것은 한국교회를 갱신했고, 한국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성봉 목사의 회개운동은 이것을 계승하고 있다.”고 밝혔다

- "이성봉 목사, 회개와 재림 강조했다" (2)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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