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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봉 목사, 회개와 재림 강조했다" (2) (뉴스파워 2018. 11. 16.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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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WHCM (14.♡.23.63)
댓글 0건 조회 582회 작성일 18-11-16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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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봉 목사, 회개와 재림 강조했다" (1)에 이어서 -
 
이어 김철영 목사의 진행으로 대담을 했다.
 
우선 박 교수에게 이성봉 목사가 가장 큰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 이명직 목사가 어떤 분인지를 소개를 부탁했다.
 
박 교수는 이명직 목사는 일본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한국에 와서 목회도 하고 신학을 가르쳤다. 1916년부터 경성성서학원 교수로 활동하셨기에, 이성봉 목사님이 1925년 입학했을 때 이미 교수 경력이 10년째였다.”이명직 목사도 철저한 회개 경험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특히 “1921년 목숨 걸고 기도해서 성결을 체험하고, 자기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학생들 앞에 자백했다. 그러니 학생들도 죄를 자백하기 시작했다. 결국 2주 동안 수업을 멈추고 서로 죄를 자복하는 부흥의 시간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증인 앞에서 죄를 자백하는 것에 대한 견해도 질문했다. 김명혁 목사는 무엇을 어떻게 하든지, 정말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 중요하다.”그 사람이 자복하는 것도 형식적일 수 있겠지만, 정말 순수하게 우리가 십자가 복음으로 바뀌면 배상을 하든 않든 아름답다. 하지만 그것 없이는 아름답지 못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당시 공개적 회개는 교회에서 법적으로 진행된 게 아니라, 성령의 은혜 가운데 자연스럽게 표현된 것이라며 법적으로 자꾸 따지면 문제가 될 것이다. 진정으로 회개했다면 그의 삶이 달라져야 한다. 초기 한국교회 회개는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동시에, 자기로 인해 해 입은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직접 배상을 했다. 그렇게 하니까 사회가 교회를 보는 눈이 바뀌었다.”며 초대 한국교회의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철영 목사가 언젠가부터 한국교회 강단에서 재림 신앙 설교가 사라졌다.”고 하자 김명혁 목사는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신앙의 선배들을 바라보고 예수님 바라보라고 했다. 우리가 길선주 목사와 이기풍 목사 등 신앙의 선배들을 억지로라도 바라보고 배우려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에게 최자실 목사가 이성봉 목사로부터 받은 신앙적 감화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줄 것을 요청했다.
 
박 교수는 최자실이 이성봉 목사가 인도하는 집회에 참석했을 때 죄에 대한 회개 설교를 듣고 자기 죄가 낱낱이 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십자가 보혈로 용서함 받은 것이 느껴지니, 세상이 달라 보였다고 한다.”고 밝혔다.
 
특히 최자실 권사 그때 방언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성결교회 여전도회장을 맡고 있었어 서울신학대학교로 진학하려 했는데, 이성봉 목사가 방언을 인정하는 곳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해서 순복음 신학교로 갔다.”거기서 조용기 목사를 만났다고 한다. 이성봉 목사는 방언을 강조하진 않았지만, 그의 집회에서는 역사가 많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김명혁 목사는 이성봉 목사에게는 양면성이 있었다. ‘가슴은 뜨거워야 하지만 머리까지 뜨거워지면 안 된다고 늘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성봉 목사가 일제강점기 때 재림 신앙에 대해 설교했다가 일본 경찰에 의해 검거되어 조사를 받은 것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박 교수는 한국교회가 신사참배 문제만 이야기하는데, 당시 더 큰 문제는 재림 신앙이었다.”일본은 천황을 국체명징(國體明徵)’이라고 하면서, 천황을 중심으로 새로운 아시아 질서를 만들려는 대동아 공영권을 내세웠다.”고 말했다.
 
이어 아시다시피 성결교회는 중생·성결·신유·재림의 사중복음을 이야기한다.”예수님이 왕으로 오신다고 하면, 일제가 보기에 논리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누가 진짜 주인인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일제 말기 재림 신앙을 강조하는 교회들을 많이 박해했다. 성결교회, 순복음 등 다 문 닫게 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일제 말 일본이 한국 기독교를 어떻게 봤는지 알 수 있는 당시 문서를 발굴했는데, 첫째가 재림 신앙이었다.”이를 불온사상으로 여겼다. 예수님이 왕으로 오셔서 천년왕국을 세우신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예수 믿고 천당 간다고 하면 오히려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재림 후 천년왕국은 세상 왕국과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주기철, 손양원 목사도 재림 신앙을 분명히 믿었기에, 일본과 대립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담을 마무리하면서 김명혁 목사는 나의 나 된 것은 순교하신 아버지와 어린 시절 주일학교 선생님들 다음으로, 이성봉, 김치선, 한경직, 박윤선 목사 등이 있었다. 그 분들 덕분에 지금 제가 여기 있다.”이성봉 목사는 제 젊은 시절을 만들어 주신 분이다. 그 분들의 가르침을 받았지만, 회개와 성결과 재림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죄밖에 없는 죄인이다. 죄송한 마음뿐이고, 회개할 수밖에 없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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