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봉 목사 설교 듣고 살인죄도 회개" (2) (뉴스파워 2018. 11. 16.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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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는 고백, 혹은 자백(자복)이다. 이명직 목사와 한국 성결교회의 부흥회 기사를 보면 수 많은 죄의 자백이 나타나고 있다. 〈활천〉은 자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자복에 대하야 죄를 자복하야 바리지 아니하면 시톄를 방안에 둔 것과 갓하야 하나님의 말삼을 드를 마다 내암새가 나게 된다. 죄를 자복하는 것은 가나안 7족쇽을 멸하는 것이다. 죄를 자복하는 것은 나의 죄를 十자가에 못 박는 것이다. 죄를 자복지 아니하면 항샹 마귀의게 위협을 당한다. 더러만 하는 자복은 아해낫고 후산 못한 것 갓다.”
넷째 배상이다. 배상은 지은 대로 갚는 것이다. 금전적인 죄는 금전으로, 말로 지은 죄는 말로 구체적으로 배상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회개의 열매이다. 이런 것은 초기 한국교회에서 보편적인 것이었고, 특별히 성결교회에서는 더욱 강조되었다.
이성봉은 경성성서학원에서 특별히 “회개와 합당한 열매”를 강조하는 것을 배웠다. 그는 21세 때 회개했지만 아직 거기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자신을 돌아보니 철저하게 회개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오래 전에 기차를 탈 때 나이를 속이고, 반표를 산 것이 생각이 나서, 총독부 철도국장에게 사죄 편지와 함께 4배의 요금을 보냈다. 그랬더니 사죄장과 함께 돈도 학비로 쓰라고 다시 보내왔다.(39)
이성봉의 부흥운동은 그의 신학교시절 주일학교 부흥운동부터 시작한다. 성서학원에 다니면서 그는 1927년 경북김천에서 여름에 봉사하게 되었고, 이 때 주일학교 부흥회를 인도하였다. 이성봉은 주일학교 학생들에게도 역시 회개를 강조하였다. 그랬더니 순진한 어린 심령들이 다 자백하고 무서운 죄를 회개하였다. 여기에 놀란 사람들은 이성봉을 비난하였고, 신문기자들은 찾아와서 어린이를 마취하였다고 공격하였다.(40)
성결교회는 소아 부흥집회를 종종 개최하였는데, 역시 죄의 회개에서부터 시작하였다. 이것은 어린아이도 원죄 아래 있으며,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죄를 깨달을 수 있고, 참된 회개에 이를 수 있다는 신학에 근거한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의 낙관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일반교육과는 구별되는 것이다.
4. 이성봉의 목회시대와 회개
이성봉목사의 첫 번째 목회지는 수원이었다. 이곳에서 그는 회개의 복음을 외쳤다. 그 결과 어느 날 새벽기도 후 한 청년이 일곱가지 죄를 써가지고 와서 죄를 자복하였다. 그 중 하나가 황해도 국무농장에서 사무원으로 있을 때 공문서를 위조하고 횡령한 것이었다. 이 청년은 죄에 대한 변상으로 교회에 헌금하겠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이성봉은 변상은 그 대상자, 곧 농장에 하라고 권하였다. 결국 이 청년은 고민하던 중, 말씀에 순종하여 자복서를 농장 주임에게 보냈다. 얼마 후 농장주임은 자복서에 감복했다는 내용과 함께 용서한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이것은 초기 한국교회와 성결교회의 전통이었다.
이성봉에게 회개는 일회성이 아니라 평생의 과제였다. 수원교회에서 목회하던 중, 몸이 몹시 쇠약하여 졌는데, 혼몽 중에 “이제 살기 어렵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자신 속에 회개하지 못한 것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아내를 불러서 증인을 삼고, 자기 청년시절에 연애하던 시절을 고백하였다. 사탄은 이것을 방해했으나 끝까지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하고, 회개하였다. 긴 고통의 시간이 지난 다음에 그는 큰 은혜를 받았고, 몸은 온전히 치유를 받게 되었다. 여기에서도 회개, 은혜체험와 신유는 연결되어 나타났다.
이성봉목사의 두 번째 목회지는 목포였는데, 여기에서도 그는 회개의 복음을 외쳤다. 이 설교를 들은 그곳 신문사 사장 소실이 회개하고 첩살림을 청산하였다. 이것을 핑계로 신문은 이성봉목사가 가정을 파괴했다고 신문에 기사를 내 보내기도 하였다. 또 일부 청년들은 이성봉목사를 축출하고자 그가 설교에서 너무 죄를 많이 지적한다고 총회본부에 불만을 보고하기도 하였다.(53-54)
이성봉목사의 세 번째 목회지는 신의주였다. 이곳에서 그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의 자서전은 이곳에서 회개한 이야기를 길게 설명한다. 그것은 주일 아침에 설교준비를 하는데, 아내가 닭을 잡으라고 해서 싫지만 억지로 닭을 잡으러 나갔다. 그러나 닭은 이성봉목사의 오른 손에 상처를 남기고 날아갔다. 매우 아팠다. 아픈 손을 잡고 기도하다가 그는 자신의 이기적인 모습을 발견했다. 지금까지 자신은 주의 종이라는 이유로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 미루었다. 그는 “다시는 나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 미루지 않겠습니다.”라고 회개하였다.(60) 이성봉의 회개 이야기는 거창한 회개만이 아니라 일상에서 일어난 것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매일 매일 주와 동행하려고 하는 그의 삶은 회개로 이어졌던 것이다.
5. 이성봉의 부흥회와 회개
1937년 성결교회 총회는 이성봉을 전국순회부흥사로 임명하였다. 이제 이성봉목사는 개교회 목회에 구애받지 않고, 전국으로 돌아다니면서 집회를 인도하였다. 이성봉목사의 부흥집회는 수많은 회개운동을 일으켰다. 특별히 여성들은 이성봉목사의 회개 외침에 진정으로 응답하였다. 당시 한국여성들의 가장 큰 문제는 축첩이었다. 이성봉목사의 집회에는 많은 첩들이 나오게 되었고, 이들은 복음을 받아들이자 첩 생활을 청산하였다.
그 중의 하나가 함북 웅기교회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어느 부잣집 소실이 복음을 듣고 첩살이를 포기하였다. 이 여인에게는 자식이 3남매가 있었는데, 남편은 자식을 생각해서라도 돌아 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돌아오지 않고 혼자 장사를 하며 교회에 충성하였다. 남편은 나중에 이 소식을 듣고, 재산을 나누어 주었다. 이 여인은 이 재산으로 자녀를 키우며 교회를 섬겼다. 믿음으로 승리한 것이다.(71)
이성봉목사는 일제말 평양의 3개 노회(평양, 강서, 안주) 연합집회를 인도한 경험이 있다. 이 때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는데, 그 중 가장 클리이막스는 살인죄의 회개였다. 이 집회에 참석한 최경자라는 신자가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평양경찰서에 찾아가서 살인죄를 회개하였다. 원래 이 여인은 결혼해서 아니 셋을 나았는데, 얼마가지 않아서 남편이 죽고, 곧 이어서 아들이 죽고, 따 둘 남았다. 이 두 딸을 데리고 친정에 갔으나 부모는 이혼했고, 어머니에게 갔지만 박대하였다. 그래서 작은 딸을 죽여버리고, 큰 딸을 데리고 동해바다에서 자살하려고 했는데, 딸이 “어머니 살자”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돌아와서 선교사집에서 식모생활을 하다가 이성봉목사의 집회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고 회개한 것이다. 경찰이 조사를 해 보니 사실이었다. 그러나 정상을 참작한 경찰은 이 여인에게 일년 징역에 3년 집행유예를 선고하였다. 이 여인은 기간을 지나고 나와서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하였다.(89)
그러면 이성봉목사의 일제말 행적은 어떠했는가? 일제 말을 지나온 한국교회 지도자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는 질문이다. 이성봉목사는 일제 말, 가능한대로 신사참배를 피해 보려고 노력했다. 당시 집회를 열려면 경찰의 허락을 받아야 했고, 이 과정에서 뇌물이 오가기도 하였다. 이성봉목사는 이것을 마음 아파했다. 이성봉목사는 이런 상황이 싫어서 일제 말에는 만주로 가서 활동하였다. 하지만 종종 조선으로 와서 집회를 인도하였다. 그는 집회에서 재림의 복음을 주장하였고, 이것이 일본경찰에게 들어갔다. 그래서 사리원에서 검거되었다. 하지만 6개월만에 기소유예로 풀려나왔다. 이렇게 일제에 의해서 고난을 받았지만 이성봉목사는 자신의 신앙이 완벽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일제말의 행적이 오십보, 백보였다고 말한다. 그것은 정도의 차이일 뿐 실지로는 신앙의 정조를 다 지키지 못하였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는 화간과 강간을 구분한다. 화간은 자신이 원한 것이요, 강간은 강제로 당한 것이다. 자신의 모습은 일제에 의해서 강간을 당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강간인지 화간인지는 하나님 만이 판단할 문제라고 보았다. 그러나 그는 항상 일제 말 자신이 보다 강하게 신앙의 정조를 지키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있다.(9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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