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봉 목사 설교 듣고 살인죄도 회개" (1) (뉴스파워 2018. 11. 16. 14:57) > 신문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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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봉 목사 설교 듣고 살인죄도 회개" (1) (뉴스파워 2018. 11. 16.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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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WHCM (14.♡.23.63)
댓글 0건 조회 654회 작성일 18-11-16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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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봉 목사 설교 듣고 살인죄도 회개"
박명수 교수(서울신대 교회사), 이성봉 목사의 부흥운동 대담에서 소개
 
 
                       
서울신대 박명수 교수(교회사)는 지난 15일 오전 서울 강남구 도곡동 강변교회(담임목사 이수환)에서 21TV 주관으로이성봉 목사님의 회개와 은혜 사모와 성결과 재림의 영성을 염원하며주제로 김명혁 목사(전 합동신학교 교장, 강변교회 원로)와의 대담에서 이성봉 목사의 부흥집회에서 딸을 죽인 여인이 죄를 자백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이성봉 목사는 일제말 평양의 3개 노회(평양, 강서, 안주) 연합집회를 인도한 경험이 있다. 이 때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는데, 그 중 가장 클리이막스는 살인죄의 회개였다.”며 이같이 밝혔다.
 
박 교수는 이 집회에 참석한 최경자라는 신자가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평양경찰서에 찾아가서 살인죄를 회개하였다.”원래 이 여인은 결혼해서 아니 셋을 나았는데, 얼마가지 않아서 남편이 죽고, 곧 이어서 아들이 죽고, 따 둘 남았다. 이 두 딸을 데리고 친정에 갔으나 부모는 이혼했고, 어머니에게 갔지만 박대하였다. 그래서 작은 딸을 죽여버리고, 큰 딸을 데리고 동해바다에서 자살하려고 했는데, 딸이 어머니 살자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돌아와서 선교사집에서 식모생활을 하다가 이성봉목사의 집회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고 회개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경찰이 조사를 해 보니 사실이었다. 그러나 정상을 참작한 경찰은 이 여인에게 일년 징역에 3년 집행유예를 선고하였다. 이 여인은 기간을 지나고 나와서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한국 교회가 죄 자백의 전통을 계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대담 진행은 김철영 목사(세계성시화운동본부 사무총장, 뉴스파워 대표)가 맡았다.
 
다음은 이성봉목사의 삶, 부흥운동, 그리고 회개발표문 전문.
 
 
 
많은 사람들은 한국교회의 신앙이 1907년 대 부흥운동을 통해서 구체화되었다고 말한다. 1907년 대부흥운동의 핵심은 진정한 회개였다. 이것은 1907년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이성봉목사의 삶과 부흥운동은 우리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 준다. 필자는 이 글에서 이성봉목사의 삶과 목회와 부흥운동에서 나타난 회개를 살펴보려고 한다.
 
필자는 이성봉목사의 자서전 [말로 못하면 죽음으로]를 중심으로 이 문제를 다루려고 한다. 우선 말하고 싶은 것은 그의 자서전은 어거스틴의 참회록과 같이 자신의 죄악과 잘못을 철저하게 회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의 자서전은 일종의 참회록이라고 말할 수 있다.
 
1. 유년시절과 회개
 
우리가 그의 자서전을 읽어 보면 그 첫 줄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나의 선조와 부모님은 이렇다 할 가문이 못된다. 그 보다 더욱 죄에 얽매인 하류층의 가정이었는지도 모른다.”(17) 보통 자서전의 첫 줄은 자신의 가문을 자랑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그의 자서전은 자신의 가문의 죄를 고백하는 것으로 출발한다. 이것이 그의 위대한 점이다.
 
그는 곳 이어서 우리 부모님이 모두 예수를 믿고 자기들의 죄의 고민으로 증인삼아 나를 데리고 산중으로 들어가 아버지는 아버지의 죄를, 어머니는 어머니의 죄를 회개하는 것을 들었다. 그때에 나는 부모님들의 죄악의 혈통을 이어받았음을 알게 되었다.”(17)고 말한다. 이것은 이성봉목사가 어려서부터 회개교육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부모로부터 받은 기독교는 신앙을 갖기 위해서는 자신의 죄를 고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성봉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원래 장로교회와 감리교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하였다. 따라서 이 같은 죄에 대한 고백은 당시 한국교회의 보편적인 모습이었고, 이성봉목사는 이것을 계승한 것이다.
 
우리가 이성봉목사의 자서전을 읽어 볼 때 우리는 어거스틴의 고백록과 같이 인간의 죄악이 얼마나 큰가를 강조하는 것을 본다. 그는 7세 때 동생이 태어났는데, 동생에 대한 질투가 생겼다. 그런데 그 동생이 세살 때 죽었다. 이것을 보면서 시원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의 내면에 악착스러운 마음이 있다고 고백하였다.(20) 이것은 인간의 내면에 있는 죄성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 내면의 죄성을 인식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삶의 자세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같은 고백은 그가 장성하여 기독교신앙의 깊이에 들어갔을 때 이루어진 것이다.
 
이성봉이 아홉 살이 되었을 때, 그는 주일에 교회를 가지 않고 아버지가 모아 놓은 돈을 훔치기 위해서 아버지의 전대를 뒤지고 있는데, 외할머니가 들어오셨다. 그래서 순간에 그는 아버지의 전대를 붙잡고, 들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외할머니는 이성봉의 기도모습을 보고, 우리 손자가 신앙이 좋다고 칭찬하였다. 이성봉은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졌다고 감사 기도하였다.(21-22) 하지만 그 돈을 가지고 과자를 사먹었다. 여기에서 그의 기도는 죄에 대한 기도가 아니라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기도였다. 하지만 그 후 그가 참된 신앙을 가졌을 때 이것도 철저하게 회개하였다.
 
2. 이성봉의 최초의 회개
 
이성봉의 젊은 시절은 낙망과 좌절의 시기였다. 어머니가 교사로 있던 황해도 신천의 경신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평남 대동군으로 돌아와서 농사를 도왔다. 큰 꿈은 있었지만 시골에서 과수원 일을 하였다. 그에게 유일한 희망은 돈을 버는 것이었고, 신앙은 점점 쇠퇴하였다. 21세 되던 6월 어느 날, 주일을 지키지 않고 과일을 가지고 평양에 나가서 물건을 팔고, 온갖 타락한 일을 다 하였다. 그런 데 돌아오는 길에 오른 쪽 다리가 뜨끔하고, 쿡쿡 쑤시기 시작하더니 결국은 쓰러지고 말았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원망했지만 점점 자신의 적나라한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고, 이것은 철저한 회개로 이어졌다. 이것은 이성봉목사의 생애에 있어서 최초의 진정한 회개였다.
 
이 최초의 회개는 몇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 첫째, 자신의 죄인 됨의 자각이다. “나는 이제 죄인인 것을 알았다. 법률상으로 지은 죄, 도덕상으로 지은 죄, 양심상으로 지은 죄 등등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나는 죄인인 것을 깨달았다.”(32). 그는 이것을 놓고 간절하게 회개하였다. 둘째, 어머니의 교육이다. 회개는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회개에 대한 분명한 교육이 있을 때 가능하다. 이성봉의 어머니는 그에게 회개하라. 죄 지은자가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고, 회개하지 않은 자가 지옥에 가는 것이다.”(32) 셋째, 사명에 대한 자각이다. 이성봉은 회개를 위한 기도를 하면서 이제는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겠다고 고백하였다. "한번만 살려 주시면 이 몸을 주님께 바치고, 이 사실[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 증거 하겠습니다.“(33) 넷째, 회개는 새로운 삶을 제공해 주었다. 그의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평안을 주었고,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새롭게 보게 되었고, 과거의 모든 죄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회개는 과거와 단절하게 만들었다. 다섯째, 그의 회개는 신유와 연결되었다. 하지만 당장에 신유가 일어난 것은 아니다. 이미 은혜가 시작되었으나 병에서 완전하게 치유된 것은 3년 후였다. 그는 독립운동에 가담했다는 연유로 조사를 받았으나 이 병 때문에 수감을 면하였다. 어쨌든 그의 회개를 결국에 가서는 신유로 이어졌다.
 
3. 경성성서학원과 회개
 
이성봉목사는 1925년 경성성서학원에 입학하였다. 은혜를 체험한 그가 신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중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것이 장애물이 되었다. 그런데 경성성서학원의 소문을 듣고, 입학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성결교회 교역자가 되는 훈련을 받게 되었다. 그는 이곳에서의 생활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곳에서는 나를 3년간 불가마에서 빚어냈는데, 지적으로는 별것이 없었으나 영적으로 부흥과 말씀과 신앙을 통하여 깊이 지도해 주시는 선생님들 --- 그 중에서도 이명직목사님은 나의 잊지 못할 은사이니, 그의 성경강의와 설교 때는 시간 시간이 은혜로왔다.”(38)
 
먼저 이명직 목사는 부흥회의 중심이 진정한 회개에 있다고 보았다.이명직 목사는 회개를 위해서는 첫째 철저한 죄의 각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죄의 각성을 위해서는 율법이 필요하다. 루터는 율법은 병을 주고, 복음은 치료한다고 했다. 이명직 목사는 진정한 부흥회는 죄에 대한 설교에서 시작한다고 보았다. 죄에 대한 분명한 설교가 없이는 회개는 가능하지 않다. 이명직 목사는 죄와 더불어서 지옥에 대한 분명한 설교를 하였다. 심판을 말하지 않는 죄에 대한 설교는 파괴력이 없는 망치와 같다. 이런 점에서 이명직 목사는 설교의 목적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것이지 그들의 흥미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둘째는 통회가 필요하다. 통회란 마음 속 깊이 뉘우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명직 목사는 부흥회 때에 통회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통성 기도를 하게 한다. 통성 기도는 한국교회와 성결교회 부흥회의 중요한 전통이다. 성결교회의 부흥회는 보통 설교 후 통성 기도로 이어진다. 성결운동은 부흥회 동안에 죄를 회개하고, 은혜를 사모한다는 의미에서 은혜좌, 곧 앞의 제단으로 신자들을 초청하였다. 이명직 목사도 상해의 집회 기간동안에 신자들을 은혜좌로 초청하기도 하였다. 이런 초청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신앙을 분명하게 하도록 한다.
 
- "이성봉 목사 설교 듣고 살인죄도 회개" (2)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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