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풍 목사는 한국의 사도 바울" (2) (뉴스파워 2019. 2. 22.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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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는 “이기풍 목사는 사도 바울이 경험한 경험을 모조리 경험한 것 같았다.”며 “이기풍 목사님은 13년 동안의 제주도 사역을 통해 제주도에서 사탄 마귀의 어두움의 세력을 몰아내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을 비추게 했다. 30여 개의 교회를 설립했다. 1934년에는 제주도 독노회를 조직하게 했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이기풍 목사는 13년 동안 제주도 성내교회에서 목회하는 동안 새벽마다 자기는 죄인중의 괴수라고 고백하면서 회개의 기도를 처절하게 드렸는데 새벽기도를 마친 다음 거의 한 시간 동안 울면서 회개의 기도를 드렸다고 그의 딸 이사례 권사가 간증을 했다. 이기풍 목사는 정말 사도 바울이 경험한 경험을 모조리 경험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특히 “이기풍 목사는 신사참배를 반대한 순교자가 되었다. 그는 제주도 복음 사역을 마친 후에도 한국교회를 위해서 평생을 바쳤다. 특히 전라도 복음화를 위해서 그의 남은 생애를 바쳤다. 광주에서, 순천에서, 고흥에서, 벌교에서, 여수군 남면에서, 돌산, 완도 등지의 도서지방에서 복음을 전했고 1927년에는 다시 제주도에 가서 복음을 전하기도 했다.”며 “평양 출신으로 이방과 같은 제주도와 전라도에 가서 평생 복음을 전했다는 것은 사도 바울과 같은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고 하겠다.”고 평가했다.
이기풍은 일제가 1936년을 기점으로 신사참배를 강요하자 이에 정면으로 맞서서 투쟁했으며, 일제는 그를 미제의 스파이라는 죄목으로 1938년 체포해서 순천 감옥에 투옥했다. 그리고 그에게 갖은 고문을 가했다. 칠순의 노구로 당한 일경의 취조와 고문은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순천에서 광주형무소로 이감되는 도중에 그는 쓰러지고 말았다. 결국 이기풍 목사는 1942년 6월 20일 77세를 일기로 사도 바울처럼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그의 마지막 생명을 순교의 제물로 주님께 드렸다.
김 목사는 “이기풍 목사님의 삶을 돌아보면서 한 사람의 생애와 운명이 예수님을 믿으므로 완전히 바꾸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 한다.”며 “기질도 습관도 운명도 완전히 바꾸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고 밝혔다.
이어 김철영 목사(세계성시화운동본부 사무총장) 사회로 질의 응답이 진행됐다.
김 목사는 “마포삼열처럼 우리나라에서 파송한 선교사들도 선교지에서 박해와 핍박 가운데 맺어진 변화나 열매의 기록들이 있는가”를 물었다.
이에 대해 나이지리아 선교사를 역임한 강승삼 목사는 “한국 선교사님들의 경우 해외에 나가서 순직하신 분들이 많이 있다.”며 “순직과 순교 사이에 혼돈을 일으킬 수 있는데, 직접적으로 예수를 전하다 핍박을 받고 죽게 되면 순교이다. 하지만 선교하러 갔다가 교통사고로 죽은 것은 순교가 아니라 순직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기풍 선교사의 경우 순교로 보는 것이 맞다. 질병과 고령에도 전도를 계속 하다 일제에 의해 감옥살이를 하다 돌아가셨기 때문”이라며 “ 그의 믿음과 신사참배 거부 운동 등을 고려한다면 순교가 맞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명혁 목사는 “선교사들이 선교에 그치지 않고 모두를 끌어안는 사랑을 전했다. 이기풍 청년이 깡패들을 데려와 마포삼열이 건축하고 있던 장대현교회를 때려 부쉈을 때, 이기풍을 온유하게 대했다. 그랬더니 평양 시민들이 마포 선교사님을 존경하게 됐다. 선교사들은 교회를 세우기보다 불쌍한 사람들을 돕고 가르쳐 주고 병원을 세운 다음에야 교회를 세웠다.” 며 “한국 선교사들도 선교지에서 진리만 외칠 것이 아니라 그들을 끌어안고 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철영 목사는 네비우스 선교 전략이 한국 선교에서 구체적으로 채택되고 시행된 계기가 있었는지를 물었다. 이에 대해 강승삼 목사는 “네비우스 선교정책은 중국에서 시작됐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네비우스가 한국 선교사 수련회에 초청받아 자신의 정책을 2주간 나누면서 선교사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 목사는 “네비우스 선교정책이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교회 성도들이 교회 자립을 위해 적극 참여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했다.
강승삼 목사는 “성미 제도를 보면 목회자나 선교사들이 가르쳐 준 것이 아니다”며 “여전도회에서 자발적으로 십시일반으로 ‘우리 목회자들 굶겨선 안 되겠다’며 집에서 밥을 지으면서 한 줌씩 떼어놨다가 교회로 가져온 것이다. 이런 제도들이 한국교회 자립에 큰 공헌을 했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이기풍 목사님은 안창호 선생님을 존경해서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중국으로 떠나려 했지만, 결국 그렇게 하지 못했다. 한국인 최초 7인 목사 중 한 분이고 평양대부흥운동의 주역인 길선주 목사는 3.1운동 때 33인 중 한 사람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기풍 목사는 왜 참여하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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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김명혁 목사는 “이기풍 목사는 독립운동 대신 십자가의 복음과 사랑을 전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라며 “요즘 민족주의나 국가주의, 이스라엘주의 등은 문제가 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회복보다 하나님 나라 건설을 더 중시했다. 민족을 초월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승훈 장로와 조만식 장로는 나중에 ‘예전에는 민족주의자였지만, 지금은 아니다’고 고백했다.”며 “해방 후에도 ‘일본놈이라고 하지 말고 잘 보내드려라’고 했다. 민족주의를 초월하신 분들이다. 우리 강승삼 박사도 이기풍 목사님의 선교 정신을 이어받아 아프리카로 선교를 떠나셨다.”고 말했다.
강승삼 목사는 “공군에서 8년3개월 근무한 후 고등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10년을 교편생활을 한 후 총신에서 공부를 했다. 그 때 김명혁 목사님으로부터 선교학을 배웠다. 그리고 졸업 후 나이지리아 선교사로 나갔다. 당시 한국에서 파송한 해외 선교사가 23명밖에 되지 않을 때였다. 선교사 사역 후 돌아와서 총신대에서 선교학을 가르쳤다.”고 말했다.
강 목사는 “이기풍 목사가 독립운동을 하지 않은 것은 전적인 성령의 간섭이었을 것”이라며 “이기풍은 김구·안창호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을 위해 상해로 떠나려다, 배에서 복통이 심해 중간 몽금포에서 내렸다. 독립운동보다는 ‘복음운동’을 하라는 섭리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철영 목사는 “이기풍 목사가 개척한 제주성내교회의 기록에 의하면 1915년 12월 성탄절에 주민 3천여명이 모였다고 한다.”며 “이기풍 목사가 제주도 청년들의 미신적인 놀이 방식을 오히려 역으로 천국과 지옥의 실존을 설명한 것은 ‘문화 선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강승삼 목사는 “이기풍 목사님은 선교 훈련을 하거나 관련 선교 과목을 수강하지 못했지만 훌륭한 선교 방법을 사용했다.”면서 “(제주도의 여자들이 바다로 일하러 나갔을 때) 남자들이 밭에 나가 일하고 있을 때 농기구를 들고 같이 일을 도우면서 그들의 필요를 채우는 선교를 했다.”고 말했다.
강 목사는 “아프리카 선교 당시 물이 없는 지역에서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을 때, 우물을 파 주면서 마음 문을 열게 했다.”며 “사람들의 필요를 제공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가교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명혁 목사도 “미국에서 8개월간 안식월을 보낸 적이 있는데, NGO와 함께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를 방문한 적이 있다. 우물의 필요를 보고 전 세계에 편지를 보내 우물을 많이 파 줬다.”며 “직접적으로 전도를 하진 않았지만, 그들 마음에 감동이 있었다. 필요를 채워주면 마음이 자연스럽게 주님께로 돌아오게 된다.”고 말했다.
김철영 목사는 “이기풍 목사의 제주 선교 모델을 보면서, 오늘날 목회자들이 어떻게 지역 주민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친구가 되어주고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까”를 질문했다.
이에 대해 강승삼 목사는 “선교사 훈련에 있어 강조하는 것은, 어디에 가서도 계속 선교할 수 있도록 기술 하나씩은 익혀서 나가는 것”이라며 “성경과 제자 양육에 전문가가 됐지만, 만약 교회에서 후원이 끊어지더라도 계속 선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며 사도 바울과 같은 텐트메이커로서의 준비를 당부했다.
김철영 목사는 “이기풍 목사에게 마포삼열과 스왈른 선교사가 있었듯 두 분의 신앙에 있어서도 중요한 전기를 마련해 주신 분은 누구인가”라고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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