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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철 목사님은 순교를 사모했다" (1) (뉴스파워 2019. 4. 18.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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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WHCM (14.♡.23.63)
댓글 0건 조회 700회 작성일 19-04-18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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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철 목사님은 순교를 사모했다"
김명혁‧이응삼 목사, 주기철 목사 순교신앙 특별대담
 
김현성
 
순교자 주기철 목사의 순교 영성을 염원하는 특별대담이 18일 오전 945분 서울 강남구 도곡동 강변교회 지하 2층 비전홀에서 진행됐다.
 
김명혁 목사(전 합동신학교 교장, 강변교회 원로)와 이응삼 목사(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사업회 사무총장 역임)이 주기철 목사의 순교신앙에 대해 먼저 발표를 했다. 이어 김철영 목사(세계성시화운동본부 사무총장, 뉴스파워 대표)의 진행으로 질의 응답을 했다.
  
 
김응삼 목사는 주기철 목사님은 잘 자리를 잡아가던 부산 초량교회를 뒤로하고 마산문창교회에 부임했다. 그때 문창교회는 한창 내부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시기였다. 그래서일까. 그는 사람들에게 바보라고 불리웠다.”바보 주기철, 이런 바보가 그리운 세상이 되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주 목사님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지 7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가 그분을 추모하는 것은 그가 죽은 것이 아니라 아직도 우리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주 목사님이 사신 시대는 말 그대로 고난의 길, 광야의 길이었다. 당시 한국교회의 치욕의 시대였으며, 변절의 시대였다. 일제의 가혹한 핍박과 고문이 한국교회를 향해서 체계적으로 수행되던 바로 그 역사의 현장에서 주 목사님은 사시고 버티고 당하시면서 걷다가 순교로 생을 끝낸 우리의 신앙인이셨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주 목사님은 1931년 경남노회의 신사참배 거부를 결의한 때로부터 1944년 순교하실 때까지 13년간 신사참배 강요에 맞서 싸우는 가운데 4차례 구속을 당하셨으며, 구속 기간 동안 외로움 속에서 가혹한 심문과 갖가지 형언할 수 없는 고문을 받으셨다.”거친 잠자리와 배고픔, 혈육에 대한 그리움, 그 모든 것은 한 인간으로서는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주 목사님의 신앙은 바로 이 위기 촉발의 계속적인 시련과 아픔과 눈물의 삶, 거기에서 솟고 엉겨지고 굳어진, 생명의 신앙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주 목사님으로 상징되는 일제시대 신사참배 반대는 일제에 대한 민족 양심의 고귀한 마지막 저항이기도 하였지만 우상 숭배를 할 수 없다는 여호와 하나님 신앙에 대한 몸 바친 충성이었다.”그리고 우리 교회사에서 세 번째 커다란 시련기에 순교자가 여럿 나온 것은 공산주의의 박해 때문이었다. 수많은 이 시기의 순교자 중 주 목사님의 일사각오 신앙, 순교의 신앙의 영향으로 사랑의 원자탄이 된 손양원 목사님을 우리는 기억한다.”고 밝혔다.
▲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사업회 전 사무총장 이응삼 목사     ©뉴스파워
 
김 목사는 손양원 목사는 1944년 주 목사님의 순교소식을 듣고 주님, 이 부족한 종도 신앙의 진리를 굳게 지켜 주 목사님의 뒤를 따라 순교 할 수 있는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하고 기도했다. 주 목사님의 신앙이 얼마나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이렇듯 우리 교회사는 때로는 전통적 가치 때문에 이교직 배척,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대한 반대, 공산주의자들의 유물론적 혁명적 투쟁 때문에 겪어온 수난과 순교의 역사는 세계에 그 유례가 없으리만큼 통절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우리 한국교회가 지금 세계의 나라나 교회들이 다같이 우러러 보는 놀라운 교회의 발전을 한 그 저력이 다른데 있다고 볼 수 없다. 우리 믿음의 선조들의 이런 순교자적 신앙이 이 나라 교회에 비옥한 땅과 생명력을 남겨 놓았던 것이라며 이것이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다. 바로 순교의 역사다. 그 순교 역사 계보 중심에 주 목사님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 목사는 견디기 어려운 열악한 조건에서도 순결한 믿음을 지켜내려고 몸부림쳤던 주 목사님은 영웅적인 사람도, 대답하지도 않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주 목사님은 오정모 사모와의 마지막 면회 때 따스한 숭늉 한 사발을 그리워한 우리와 같은 심정의 평범한 사람이었다.”다만 오직 그리스도만을 높이리라는 고집스러움, 신앙의 순결을 지키고자 한 이유 때문에 죽음의 행렬에 들어선 것이라고 밝혔다.
▲ 김명혁 목사     ©뉴스파워
 
이어 김명혁 목사가 발표를 했다. 김 목사는 주기철 목사님은 예수님을 닮은 하나님 중심적 목회자였다.”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로서의 예수님의 삶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하나님 중심적인 삶이었는데, 일사각오의 자세로 믿음의 길을 달려가다가 순교한 주기철 목사님이야말로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 하나님 중심적 목회자의 삶을 살았다.”고 평가했다.
 
또한 주 목사님은 기도와 말씀의 사람이었다.”주 목사님의 부산 초량교회의 목회는 기도와 설교에 주력한 목회였는데 그의 설교는 기도의 동산에서 영근 설교였다. 주 목사님은 구덕산에 올라가 종종 철야 기도를 했다. 그는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준비한 메시지를 놓고 특별 기도를 하며 지냈고 설교 원고를 작성하다가도 가끔 산에 올라갔다.”고 말했다.
 
특히 주 목사님의 마지막 목회였던 평양 산정현 교회의 목회도 일사 각오의 기도와 설교에 주력한 목회였다.”주 목사님은 19367월 하순 평양 산정현 교회에 부임한 후 흐트러진 신앙의 분위기를 기도와 성경으로 일신하므로 산정현 교회의 교인들은 영적으로 모두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주 목사님은 신사 참배 강요에 대항해서 죽기를 각오하고 투쟁할 것을 작정하고 기도와 목회에 전력을 다했다.”고 밝혔다.
 
김명혁 목사는 주기철 목사님은 성령으로 기도하고 설교한 성령의 사람이었다.”주 목사님은 성신과 기도라는 설교에서 성신의 도움을 받아야만 바로 기도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성신은 바로 기도의 신이라고 강조했다.”고 밝혔다.
또한 주 목사님은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긴 겸손하고 소박한 사람이었다. 하나님께 대한 일사 각오의 충성과 헌신에서는 사자같이 단호하고 강했으나, 목양지의 성도들에 대해서는 비둘기같이 순수하고 부드러웠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우리들은 기도와 말씀과 섬김과 순교의 영성을 몸에 지니고 주님과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 죽도록 충성하며 순교의 피를 흘리시고 그리고 성도들과 자기를 박해하는 원수들에게까지 한없는 용서와 사랑과 섬김을 베풀다가 주님 품으로 돌아가신 주 목사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존경하며 주 목사님 앞에 무릎을 꿇고 우리들의 부끄러움을 고백하며 지극한 감사와 사랑과 존경을 표한다.”고 밝혔다.
▲ 김명혁 목사(좌)와 이응삼 목사     ©뉴스파워
 
이어 질의 응답이 진행됐다.
 
김철영 목사는 한국 대표적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 신앙과 순교의 영성에 대해 잘 들었다. 순교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 게 적절한지에 대해 질문을 했다.
 
이에 대해 이응삼 목사는 순교라는 단어가 남발되고 있다.”수련회 갔다가 사고를 당해도 순교라고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순교는 사도행전 7장에 나오는 스데반이 기본. 첫째로 복음을 전하다가, 두 번째로 적그리스도에 의해서, 세 번째로 그 분의 삶이 주기철 목사님처럼 영육 간에 누구나 존경하는 것까지 겸비해야 한다.”그렇게 사는 분이 스데반 집사였다. 그리고 주기철, 손양원 목사님의 삶이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순교자로 기리고 신앙의 모본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김철영 목사는 순교와 순직을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교회가 순교자 개념 정리가 잘 안 되고 있다.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한국 교회 순교자의 숫자는 얼마나 되는가를 물었다.
 
이응삼 목사는 전체적 확인은 어렵다. 일제 강점기나 6.25 때 집단적으로 당했기 때문에. 1-3천명 정도로 본다.”타민족보다 동족에게 죽임을 당한 경우가 많다. 스데반 집사도 그렇고, 6.25 때도 이념 때문에 대규모 순교를 당했다.”고 말했다.
 
김철영 목사는 교회사 속에서 주기철 목사 같은 대표적인 순교자를 꼽으라고 한다면 누구를 꼽을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다.
 
김명혁 목사는 스데반 집사 말씀하셨고, 150년에 서머나 교회에서 불에 타 순교한 초대교부 폴리캅을 들 수 있다. 그 분들은 순교를 사모했다. 그분들은 가난을 나의 일터로, 고난을 나의 스승으로, 죽음을 나의 애처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한 주기철 목사님은 순교를 바라셨다. 할 수 없이 그렇게 당한 게 아니라 죽기를 바랐다.”손양원 목사님이 순고하셨을 때 정양순 사모님이 시신 앞에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당신 소원대로 됐군요.’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스데반 집사가 기뻐하면서 순교했듯, 폴리캅도 날 순교자 삼으십니까라고 했다. 초대 교부 터툴리안은 순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라고 했다. 로마 시대에 많은 순교자가 생겼다. 그 덕분에 교회가 생겼다.”고 말했다.
 
김명혁 목사는 한국도 토마스 선교사가 없었다면 이기풍 목사님이 없었다.”복음을 위해 십자가를 사랑하면서 죽기를 소원하며 달려갔던 신앙의 선배들이 얼마나 귀중한가.”라고 며 순교신앙을 한국교회가 계승할 것을 강조했다.
 
김철영 목사는 본인이 자원한다고 해서 순교를 당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특별한 박해 상황 속에서 신앙을 지키기 위해 피하지 않은 믿음의 결단이 순교적 신앙으로 이끌었다.”고 말했다.
 
이응삼 목사는 오늘날에는 순교 이야기가 잘 나오지 않는다. 시대가 그렇게 변했기 때문이다. 주기철, 손양원 목사님 때처럼 예수 믿는다고 핍박하지는 않는다.”그렇다면 순교신앙이란 뭘까.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하셨는데, 소금은 맛을 내기 위해 자신이 녹아지고 희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목사는 요즘의 순교란 소금처럼 빛처럼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죽는 것보다도 우리가 주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 자체가 순교라고 생각한다.”많은 사람들이 빛을 잃고 맛을 잃었다. 이 어른들이 살던 시대에 비해 교회가 지도력과 존경을 잃었다. 그것을 회복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 우측부터 이응삼 목사, 김명혁 목사, 김철영 목사     © 뉴스파워
  
- "주기철 목사님은 순교를 사모했다" (2)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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