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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성시화운동의 '불씨' 윤수길 간사"(2) (뉴스파워 19.09.18.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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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WHCM (14.♡.23.63)
댓글 0건 조회 753회 작성일 19-09-18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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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성시화운동의 '불씨' 윤수길 간사"(1)에 이어서-


▲ 1972년 7월 31일부터 8월 4일까지 열렸던 춘천 성시화운동 전도대회. 전도실천 후 보고회를 갖는 모습     ©뉴스파워

 

 

당시 김인중 목사(안산동산교회 원로, 세계성시화운동본부 총재 역임), 김정우 교수(총신대 신대원 신약학 명예교수) 등이 학생으로 대회에 참석했다. 전용태 장로(당시 검사, 세계성시화운동본부 총재 역임 후 대표회장)도 참석했다.

 

춘천 성시화운동 전도대회는 복음이 교회 안에 갇혀 있던 것이 사회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상이용사로 여수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던 김성영 장로(여수제일교회, 여수성시화운동본부 초대 본부장)가 참석해 훈련을 받은 후 1982여수시를 예수시로!라는 슬로건을 걸고 여수성시화운동본부를 조직해 김준곤 목사 초청 여수성시화대회를 개최하는 등 성시화운동을 시작했다.

 

김 장로는 이와 함께 여수 남해화학 등 기업과 직장들에 직장신우회를 조직해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공부할 수 있도록 도전했다. 지금도 여수직장선교회는 전국에서 가장 활발한 사역을 하고 있다.


김준곤 목사는 1974813일부터 18일까지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엑스플로 ‘74대회를 개최했다. 당시 한국 기독교 인구가 280만 명에서 300만 명으로 추산되던 때 323419명이 등록하고 56일 동안 낮에는 전도훈련을 받고, 오후에는 둘씩 짝을 지어 전도를 했다. 하루에 22만 명이 결신했다는 기록이 있다. 밤에는 나라와 민족 복음화를 위해 기도했다.

 

특히 대회 셋째날 8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육영수 여사가 재일동포 문세광에 의해 서거를 당했지만 참가자들은 미동도 하지 않고 오히려 더 뜨겁게 나라와 민족을 위해 간구했다.

▲ 엑스플로 '74대회     ©뉴스파워

  

1년 후 한국 교회는 110만명이 성장했다. 엑스플로 ‘74대회에 참석했던 민족복음화의 불씨들이 그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고 성경을 공부하면서 교회들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교회가 세워지는 데 쓰임을 받았다.

 

윤수길 간사는 춘천 성시화운동 전도대회후 그해 사역을 춘천에서 서울로 옮겼다. 그리고 엑스플로 ‘74대회 이듬해인 1975년까지 사역을 하고 CCC 간사를 사직했다. 이어 총신대 신대원에 입학해 신학을 공부한 후 목사가 되어 1980년 태국 선교사로 파송을 받았다. 당시 태국에는 선교사가 4명밖에 없었다.

 

윤 선교사와 한대희 선교사 부부는 민부리에서 사역을 했다. 66세 되던 해에 GP선교사로는 1호로 66세에 은퇴를 했다. 교육권과 지상권을 모두 이양했다. 그리고 현지인 리더가 안정적이 이끌어 가도록 지난 10여 년 동안 협력했다. 1년에 한번 가서 강의도 하고, 한국 강사도 연결해 주면서 새로운 연합팀이 구성되어 안정적으로 운영되도록 조용하게 섬겼다.

 

윤 선교사와 한 대희 선교사 부부는 아직 안정적인 거처가 마련되지 않았다. 그들이 1970년대 민족복음화운동의 불쏘시개가 되어 강원도 인제와 경북 청송 등 산골 학교까지 찾아다니면서 민족복음화의 비전을 도전하면서 민족복음화의 요원으로 동참해 줄 것을 요청했던 그 때 불렀던 순례자의 노래처럼, ‘동구밖 과수원길을 부르며 풋풋한 젊음을 주님께 바쳤던 그 때처럼 그들은 여전히 순례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 엑스플로 '74대회     ©뉴스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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