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곤 목사 '성시화운동의 철학과 비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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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WHCM 댓글 0건 조회 1,857회 작성일12-08-03 15:39본문
1. 성시화운동의 개념 -‘성시화’라는 단어는 성경에는 없다. 정의를 하자면 완전 복음화된 도시를 의미한다. 성시화운동은 예수님께서 천하 만민에게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지상명령(마 28:18~20, 막 15:15~16, 행 1:8) 성취를 돕는 운동이다.
성시화운동은 한국민족복음화운동이다. 성시화운동은 복음화된 한국민족의 자원을 세계 선교에 헌신하도록 돕는 운동이다. 이 운동을 위한 두 개의 상징적 모델로 Explo ’74와 춘천성시화운동이 있다. 성시화운동은 1530년대 칼빈의 제네바가 어린이들의 영아교육부터 전 시민의 신앙과 행위의 표준이 성경이었고, 시의회와 행정과 사법의 기본이 하나님의 영광과 그 뜻을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것을 모델로 삼은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개혁자 잔 낙스는 제네바를 살펴본 소감을 “지상 최초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삼고 하나님이 다스리는 거룩한 신정도시”라고 말했다. 성시화운동은 전교회(Whole Church)가 전시민(Whole City)에게 전복음(Whole Gospel)을 전하는 총체·총력운동(3Whole), 한 마디로 전복음운동이다.
이제 한국 교회는 성시화운동을 혈육화 시켜야 한다. 목회의 개념을 혁명해야 한다. 양(교인)은 우리 안에 있는 양과 우리 밖에 있는 양이 있다. 우리 밖에 있는 양은 전도와 복지, 사랑과 정의 실천의 대상이다. 그리하여 지역 사회에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실천되도록 해야 한다.
성시화운동은 전교회가 전시민을 전복음으로 돌봐 주는 운동이다. 그렇게 하면 깨끗한 도시를 만들 수 있다. 깨끗한 도시란 도덕적, 환경적, 사랑의 관계, 화목한 도시를 말한다. 성시화운동은 기도 운동이다. 모든 교회와 크리스천이 그들이 속한 도시의 영혼들을 위해, 도시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을 놓고 기도하는 운동이다.
기도 없는 성시화운동은 실패한다. 기도보다 성령보다 앞서지 말아야 한다. 개인이 구원받으면 의식이 변화되고, 생활이 변화되고, 그가 속한 공동체가 변화된다. 그렇게 하면 교회 공동체가 도시 공동체를 전인 건강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청정 산업을 많이 창출할 수 있다.
힘은 모일수록, 조직화 될수록, 또 쓸수록 커진다. 교회의 힘의 원천은 기도, 전도, 믿음, 모임 등이 있다. 이 힘들은 아직 활성이 덜 된 에네르기이다. 하나님이 주시고 하나님의 주도로 되어진 이 힘들을 총체총력으로 하나로 모아야 한다. 삼중전략 중 전복음(Whole Gospel)이 말하고 있는 복음은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하나님 나라는 헬라어로 ‘바실레이아’인데 4복음서에 79회나 기록되었다. 이 복음은 하나님 나라 복음이며 하나님 나라의 통치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궁극적으로 인간들의 육체도 구원하는 것이지만 전인구원, 우주구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주님의 주권이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다.
또한 골로새서 1장 16절의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라는 말씀처럼 하나님 나라는 입체적이다.? 마태복음 13장에 나온 누룩 비유처럼 질적으로 사회가 변화되는 것과 겨자씨 비유처럼 복음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씨앗이 되어 다시 한번 성령 폭발, 기도 폭발, 사랑 폭발, 전도 폭발의 제2의 사도행전의 폭발이 일어나 에스겔서 37장의 민족부활과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복음이 들어가면 사람이 변하고 가정도 변하고 사회도 변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다. 구원의 결과를 포함에서 전 구원이 전 복음(Whole Gospel)이다. ’74 로잔선교대회에서 4,000명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10일간 선교의 모든 이슈를 논의하면서 전도와 사회책임에 대해(evangelism and social responsibility) 정의하기를 “인간과의 화해가 하나님과의 화해는 아니며 사회행동이 전도행동은 아니며 정치해방이 구원은 아니다.
그러나 전도와 기독교인의 사회책임(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사회적으로 실천하고 구현시키는 일)은 곧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일이다. 이 둘은 불과분의 관계이고 새의 두 날개와 같고 수레의 두 바퀴와 같이 필수동행관계이다.”라고 했다. 복음 전도와 정치·사회 책임도 교회가 수행해야 될 필수 우선 책임이며, 이것은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 지금까지는 복음주의 교회들이 한쪽 바퀴만 갖고 갔지만 지금부터는 균형 있게 전도와 함께 사회적 참여와 책임을 수행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복음을 실천하고 사회책임을 지는 면에서 부족하다. 그런 면에서 옥한흠 목사를 비롯한 여러 목사들이 개최한 기독교사회복지엑스포는 매우 시기 적절한 운동이었다. 구세군 윌리엄 부스 대장은 사회봉사와 전도는 하나라고 말한 바 있다. 20세기 한국의 제네바, 완전복음화의 모델도시 춘천. 그리하여 한국의 도시들은 물론이고 세계에서 완전 복음화된 성시시찰 관광으로 줄을 잇고 ‘Made in 춘천’ 상품은 세계에서 춘천 신자들의 신앙과 양심을 보증수표처럼 믿어지는 도시를 꿈꾼 것이 춘천성시화운동이었다.
김준곤 목사가 1962년 겨울, 삼각산에서 기도하면서 전복음운동을 통한 민족복음화의 비전을 구체적으로 담은 기도문이 <민족복음화의 기도와 환상>이다.
“민족의 가슴마다 피 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시옵소서. 하나님나라가 이 민족 마음마다, 가정마다, 교회마다, 사회의 구석구석, 금수강산 자연환경에도 임하게 하시고 뜻이 하늘에서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시옵소서! 자아의식이 예수의식으로 민족의식과 예수의식이 하나 되게 하옵소서! 이 땅에 태어나는 어린이마다 어머니의 신앙의 탯줄, 기도의 탯줄, 말씀의 핏줄에서 자라게 하시고 집집마다 ‘이 집의 주인은 예수님’이라고 고백하게 하시고, 기업주들은 ‘이 회사의 사장은 예수님이고 관리인’이라고 고백하는 민족, 두메마을 우물가의 여인들의 입에서도, 공장의 노동자들, 바다의 선원들의 입에서도 찬송이 터져나게 하시고, 각 학교 교실에서 성경이 필수과목처럼 배워지고 국회나 각의가 모일 때도 주의 뜻이 먼저 물어지게 하시고, 국제시장에서 한국제 물건들은 한국인의 신앙과 양심이 으레 보증수표처럼 믿어지는 민족,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삼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삼으며 신구약성경을 신앙행위의 표준으로 삼는 민족, 민족 의식과 예수의식이 하나 된 지상최초의 민족, 그리하여 수십만의 젊은이들이 예수의 꿈을 꾸고 인류구원의 환상을 보며 한 손에는 복음을, 다른 한 손에는 사랑을 들고 지구촌 구석구석을 누비는 민족이 되게 하시옵소서. 공산혁명이 휩쓸고 간 폐허의 땅 북한에도, 죄악과 비리와 불의가 난무하는 남한 땅에도 혁명의 개념을 혁명한 예수의 혁명으로, 이 수년 내에 대부흥이 일어나(합 3:2) 니느웨성처럼 회개한 민족, 해골 떼가 생명군대로 부활한(겔 37장) 민족, 성민(聖民) 코리아 되게 하시옵소서.”
이런 도시의 목적은 인간에 의한 지상 유토피아 실현이 아니라 주님의 복음을 전하라는 지상명령 성취가 첫째 목적이다(마 28:18~20, 막 16:15~16, 요 20:21, 행 1:8). 전 인류, 개개인은 영원한 생사의 분기점에 서 있다.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엡 2:8)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행 2:21, 롬 10:13, 행 16:31). 이보다 더 복된 기쁜 소식은 없다(눅 2:10).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신다(요 3:16, 딤전 2:4, 벧후 3:9).
우리에게 중요하고 필요하고 급한 일이 많다. 그러나 복음전도 보다 더 급하고 더 중요하고 더 우선해야 할 것은 없다. 전도는 교회의 호흡이요 영혼이다. 전도 최우선은 신학의 논란의 대상이 아니다. 개개인의 영원한 생사의 문제이다(막 16:15~16).
비유컨대 전 인류는 죄와 사망의 바다에 익사해 있는데 거기서 건져내는 일이 복음전도이다. 주님은 전도를 고기 잡는 일에 비유하셨다(마 4:19). 베드로를 부르실 때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하셨다. 고기 잡는 법은 다양하다. 낚시질같이 개인전도하는 방법이 있다. 고깃배 한 척으로 교회 전도하는 방법도 있고 100척의 어선으로 고기떼를 만들어 몰아서 잡는 방법도 있다. 협력어업이다. 천 배를 더 잡을 수 있다. 힘을 합하면 시너지 효과가 있다(신 32:30).
세상에는 개발하면 엄청난 활성 에네르기가 될 수 있는 잠재 에네르기가 무한이 많다. 리비아 사막의 지하에는 나일강 표토수보다 많은 양의 지하수가 있었는데 동아건설이 그것을 퍼내서 사막에 생수의 강이 흐르게 했다. 우라늄 원석은 그냥 돌멩이에 불과하지만 과학적 메커니즘으로 농축우라늄을 만들면 핵발전도 되고 핵폭탄도 된다. 그런 잠재적으로 묻혀있는 에네르기는 전도하는 일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원리에도 적용될 수 있다.
우리나라 크리스천인구가 평균 20%는 된다. 한 도시 크리스천들이 다 모여 찬송하고 예수행진을 하면 여리고 성이 무너지듯 마귀 세력이 혼비백산할 것이다. 크리스천들이 오병이어를 바치면 그 도시에 구제와 봉사의 기적이 일어나 모은 것의 만 배가 모아질 것이다. 안 믿는 세상에는 신바람이라는 것도 있다. 월드컵 4강의 신화를 만드는 데 태풍의 눈의 역할을 한 것은 이른바 붉은 악마의 폭탄 같은 응원바람이었다.
“필승 코리아 대한민국” 구호에 온 국민은 하나의 무대, 하나의 관중처럼 뭉쳤다. 세계의 눈에 비친 코리아는 이 한마디 말로 농축되었다고 한다. “다이내믹 코리아” 도시마다 성시화운동이 일어나서 동네마다 목민센터가 생기고 수십만 성도의 믿는 군병들이 예수행진하며 기드온의 용사처럼 예수구호를 외치면 그 도시에 마귀 때가 폐퇴하고 그리스도의 계절이 올 것이다.
구약의 요엘과 에스더의 기도처럼 크리스천의 결집된 기도는 사도행전 오순절처럼 성령바람이 불게 할 것이다. 기도의 불씨를 모아 성령의 용광로를 만들어야 한다. 오순절 성도들이 방언으로 전도하는 것을 보고 예루살렘 사람들은 외계인의 출현을 보는 것처럼 소동하고 놀라서 서로 “이 어찌된 일인가” 했다(행 2:6~7). 그 흔해 빠진 데모시위 속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찬송 시위, 예수 행진을 한번만 해도 성도들은 신바람 나고 도시의 마귀질서는 소동할 것이다.
2. Explo ’74, 전교회 전도인화 훈련 모델 전민족복음화운동의 일환으로 C.C.C. 주관으로 74년 8월(8.13~18, 5박 6일)에 여의도 광장(5,000여 교실과 천막숙식)에 모였다. 한국민족 교인 1/10인 323,419명(당시 280만 교인)이 전도와 전도훈련으로 모였는데 90%교회가 참여했고 Explo 74 1년 후 교회출석이 33% 증가했고 헌금은 64%가 증가한 것이 통계학의 샘플링 원리에 의한 전국 1,000교회 주보를 수합한 결과로 나타났다. 그 이전에는 평균 6~8% 증가했다.
전 교회에 전도열풍 신바람 효과가 입증된 것이다. 수십만이 선교헌신을 했고 200개 나라를 중보기도 분담 입양을 했다. 그리고 경제기획원 통계에 보면, 1970년대부터 80년 중반까지 15년 동안 경제가 980% 성장했다고 나온다.
같은 시기에 우리나라 교회들은 350%가 성장했다. 이것은 영적 부흥이 경제부흥으로 이어졌다는 증거이다. 그 이후로 매년 한국 교회는 20%씩 성장하여 1980년 초에는 한국 교회 신자가 1,000만 명으로 성장했다.
마치 18세기 런던의 요한 웨슬레가 경건과 기도와 구제훈련을 했던 것에 대해 교회사가들이 “홀리클럽은 불란서 혁명 같은 유혈 혁명을 미연에 방지했다”고 평가한 것처럼 엑스플로 ’74는 ‘예수혁명’, ‘성령충만’, ‘성민 코리아’의 기치를 걸고 전교회가 전복음을 전민족에게 전하고자 하는 전복음운동이었다.
성시화운동은 한국민족복음화운동이다. 성시화운동은 복음화된 한국민족의 자원을 세계 선교에 헌신하도록 돕는 운동이다. 이 운동을 위한 두 개의 상징적 모델로 Explo ’74와 춘천성시화운동이 있다. 성시화운동은 1530년대 칼빈의 제네바가 어린이들의 영아교육부터 전 시민의 신앙과 행위의 표준이 성경이었고, 시의회와 행정과 사법의 기본이 하나님의 영광과 그 뜻을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것을 모델로 삼은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개혁자 잔 낙스는 제네바를 살펴본 소감을 “지상 최초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삼고 하나님이 다스리는 거룩한 신정도시”라고 말했다. 성시화운동은 전교회(Whole Church)가 전시민(Whole City)에게 전복음(Whole Gospel)을 전하는 총체·총력운동(3Whole), 한 마디로 전복음운동이다.
이제 한국 교회는 성시화운동을 혈육화 시켜야 한다. 목회의 개념을 혁명해야 한다. 양(교인)은 우리 안에 있는 양과 우리 밖에 있는 양이 있다. 우리 밖에 있는 양은 전도와 복지, 사랑과 정의 실천의 대상이다. 그리하여 지역 사회에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실천되도록 해야 한다.
성시화운동은 전교회가 전시민을 전복음으로 돌봐 주는 운동이다. 그렇게 하면 깨끗한 도시를 만들 수 있다. 깨끗한 도시란 도덕적, 환경적, 사랑의 관계, 화목한 도시를 말한다. 성시화운동은 기도 운동이다. 모든 교회와 크리스천이 그들이 속한 도시의 영혼들을 위해, 도시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을 놓고 기도하는 운동이다.
기도 없는 성시화운동은 실패한다. 기도보다 성령보다 앞서지 말아야 한다. 개인이 구원받으면 의식이 변화되고, 생활이 변화되고, 그가 속한 공동체가 변화된다. 그렇게 하면 교회 공동체가 도시 공동체를 전인 건강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청정 산업을 많이 창출할 수 있다.
힘은 모일수록, 조직화 될수록, 또 쓸수록 커진다. 교회의 힘의 원천은 기도, 전도, 믿음, 모임 등이 있다. 이 힘들은 아직 활성이 덜 된 에네르기이다. 하나님이 주시고 하나님의 주도로 되어진 이 힘들을 총체총력으로 하나로 모아야 한다. 삼중전략 중 전복음(Whole Gospel)이 말하고 있는 복음은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하나님 나라는 헬라어로 ‘바실레이아’인데 4복음서에 79회나 기록되었다. 이 복음은 하나님 나라 복음이며 하나님 나라의 통치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궁극적으로 인간들의 육체도 구원하는 것이지만 전인구원, 우주구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주님의 주권이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다.
또한 골로새서 1장 16절의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라는 말씀처럼 하나님 나라는 입체적이다.? 마태복음 13장에 나온 누룩 비유처럼 질적으로 사회가 변화되는 것과 겨자씨 비유처럼 복음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씨앗이 되어 다시 한번 성령 폭발, 기도 폭발, 사랑 폭발, 전도 폭발의 제2의 사도행전의 폭발이 일어나 에스겔서 37장의 민족부활과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복음이 들어가면 사람이 변하고 가정도 변하고 사회도 변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다. 구원의 결과를 포함에서 전 구원이 전 복음(Whole Gospel)이다. ’74 로잔선교대회에서 4,000명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10일간 선교의 모든 이슈를 논의하면서 전도와 사회책임에 대해(evangelism and social responsibility) 정의하기를 “인간과의 화해가 하나님과의 화해는 아니며 사회행동이 전도행동은 아니며 정치해방이 구원은 아니다.
그러나 전도와 기독교인의 사회책임(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사회적으로 실천하고 구현시키는 일)은 곧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일이다. 이 둘은 불과분의 관계이고 새의 두 날개와 같고 수레의 두 바퀴와 같이 필수동행관계이다.”라고 했다. 복음 전도와 정치·사회 책임도 교회가 수행해야 될 필수 우선 책임이며, 이것은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 지금까지는 복음주의 교회들이 한쪽 바퀴만 갖고 갔지만 지금부터는 균형 있게 전도와 함께 사회적 참여와 책임을 수행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복음을 실천하고 사회책임을 지는 면에서 부족하다. 그런 면에서 옥한흠 목사를 비롯한 여러 목사들이 개최한 기독교사회복지엑스포는 매우 시기 적절한 운동이었다. 구세군 윌리엄 부스 대장은 사회봉사와 전도는 하나라고 말한 바 있다. 20세기 한국의 제네바, 완전복음화의 모델도시 춘천. 그리하여 한국의 도시들은 물론이고 세계에서 완전 복음화된 성시시찰 관광으로 줄을 잇고 ‘Made in 춘천’ 상품은 세계에서 춘천 신자들의 신앙과 양심을 보증수표처럼 믿어지는 도시를 꿈꾼 것이 춘천성시화운동이었다.
김준곤 목사가 1962년 겨울, 삼각산에서 기도하면서 전복음운동을 통한 민족복음화의 비전을 구체적으로 담은 기도문이 <민족복음화의 기도와 환상>이다.
“민족의 가슴마다 피 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시옵소서. 하나님나라가 이 민족 마음마다, 가정마다, 교회마다, 사회의 구석구석, 금수강산 자연환경에도 임하게 하시고 뜻이 하늘에서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시옵소서! 자아의식이 예수의식으로 민족의식과 예수의식이 하나 되게 하옵소서! 이 땅에 태어나는 어린이마다 어머니의 신앙의 탯줄, 기도의 탯줄, 말씀의 핏줄에서 자라게 하시고 집집마다 ‘이 집의 주인은 예수님’이라고 고백하게 하시고, 기업주들은 ‘이 회사의 사장은 예수님이고 관리인’이라고 고백하는 민족, 두메마을 우물가의 여인들의 입에서도, 공장의 노동자들, 바다의 선원들의 입에서도 찬송이 터져나게 하시고, 각 학교 교실에서 성경이 필수과목처럼 배워지고 국회나 각의가 모일 때도 주의 뜻이 먼저 물어지게 하시고, 국제시장에서 한국제 물건들은 한국인의 신앙과 양심이 으레 보증수표처럼 믿어지는 민족,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삼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삼으며 신구약성경을 신앙행위의 표준으로 삼는 민족, 민족 의식과 예수의식이 하나 된 지상최초의 민족, 그리하여 수십만의 젊은이들이 예수의 꿈을 꾸고 인류구원의 환상을 보며 한 손에는 복음을, 다른 한 손에는 사랑을 들고 지구촌 구석구석을 누비는 민족이 되게 하시옵소서. 공산혁명이 휩쓸고 간 폐허의 땅 북한에도, 죄악과 비리와 불의가 난무하는 남한 땅에도 혁명의 개념을 혁명한 예수의 혁명으로, 이 수년 내에 대부흥이 일어나(합 3:2) 니느웨성처럼 회개한 민족, 해골 떼가 생명군대로 부활한(겔 37장) 민족, 성민(聖民) 코리아 되게 하시옵소서.”
이런 도시의 목적은 인간에 의한 지상 유토피아 실현이 아니라 주님의 복음을 전하라는 지상명령 성취가 첫째 목적이다(마 28:18~20, 막 16:15~16, 요 20:21, 행 1:8). 전 인류, 개개인은 영원한 생사의 분기점에 서 있다.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엡 2:8)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행 2:21, 롬 10:13, 행 16:31). 이보다 더 복된 기쁜 소식은 없다(눅 2:10).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신다(요 3:16, 딤전 2:4, 벧후 3:9).
우리에게 중요하고 필요하고 급한 일이 많다. 그러나 복음전도 보다 더 급하고 더 중요하고 더 우선해야 할 것은 없다. 전도는 교회의 호흡이요 영혼이다. 전도 최우선은 신학의 논란의 대상이 아니다. 개개인의 영원한 생사의 문제이다(막 16:15~16).
비유컨대 전 인류는 죄와 사망의 바다에 익사해 있는데 거기서 건져내는 일이 복음전도이다. 주님은 전도를 고기 잡는 일에 비유하셨다(마 4:19). 베드로를 부르실 때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하셨다. 고기 잡는 법은 다양하다. 낚시질같이 개인전도하는 방법이 있다. 고깃배 한 척으로 교회 전도하는 방법도 있고 100척의 어선으로 고기떼를 만들어 몰아서 잡는 방법도 있다. 협력어업이다. 천 배를 더 잡을 수 있다. 힘을 합하면 시너지 효과가 있다(신 32:30).
세상에는 개발하면 엄청난 활성 에네르기가 될 수 있는 잠재 에네르기가 무한이 많다. 리비아 사막의 지하에는 나일강 표토수보다 많은 양의 지하수가 있었는데 동아건설이 그것을 퍼내서 사막에 생수의 강이 흐르게 했다. 우라늄 원석은 그냥 돌멩이에 불과하지만 과학적 메커니즘으로 농축우라늄을 만들면 핵발전도 되고 핵폭탄도 된다. 그런 잠재적으로 묻혀있는 에네르기는 전도하는 일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원리에도 적용될 수 있다.
우리나라 크리스천인구가 평균 20%는 된다. 한 도시 크리스천들이 다 모여 찬송하고 예수행진을 하면 여리고 성이 무너지듯 마귀 세력이 혼비백산할 것이다. 크리스천들이 오병이어를 바치면 그 도시에 구제와 봉사의 기적이 일어나 모은 것의 만 배가 모아질 것이다. 안 믿는 세상에는 신바람이라는 것도 있다. 월드컵 4강의 신화를 만드는 데 태풍의 눈의 역할을 한 것은 이른바 붉은 악마의 폭탄 같은 응원바람이었다.
“필승 코리아 대한민국” 구호에 온 국민은 하나의 무대, 하나의 관중처럼 뭉쳤다. 세계의 눈에 비친 코리아는 이 한마디 말로 농축되었다고 한다. “다이내믹 코리아” 도시마다 성시화운동이 일어나서 동네마다 목민센터가 생기고 수십만 성도의 믿는 군병들이 예수행진하며 기드온의 용사처럼 예수구호를 외치면 그 도시에 마귀 때가 폐퇴하고 그리스도의 계절이 올 것이다.
구약의 요엘과 에스더의 기도처럼 크리스천의 결집된 기도는 사도행전 오순절처럼 성령바람이 불게 할 것이다. 기도의 불씨를 모아 성령의 용광로를 만들어야 한다. 오순절 성도들이 방언으로 전도하는 것을 보고 예루살렘 사람들은 외계인의 출현을 보는 것처럼 소동하고 놀라서 서로 “이 어찌된 일인가” 했다(행 2:6~7). 그 흔해 빠진 데모시위 속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찬송 시위, 예수 행진을 한번만 해도 성도들은 신바람 나고 도시의 마귀질서는 소동할 것이다.
2. Explo ’74, 전교회 전도인화 훈련 모델 전민족복음화운동의 일환으로 C.C.C. 주관으로 74년 8월(8.13~18, 5박 6일)에 여의도 광장(5,000여 교실과 천막숙식)에 모였다. 한국민족 교인 1/10인 323,419명(당시 280만 교인)이 전도와 전도훈련으로 모였는데 90%교회가 참여했고 Explo 74 1년 후 교회출석이 33% 증가했고 헌금은 64%가 증가한 것이 통계학의 샘플링 원리에 의한 전국 1,000교회 주보를 수합한 결과로 나타났다. 그 이전에는 평균 6~8% 증가했다.
전 교회에 전도열풍 신바람 효과가 입증된 것이다. 수십만이 선교헌신을 했고 200개 나라를 중보기도 분담 입양을 했다. 그리고 경제기획원 통계에 보면, 1970년대부터 80년 중반까지 15년 동안 경제가 980% 성장했다고 나온다.
같은 시기에 우리나라 교회들은 350%가 성장했다. 이것은 영적 부흥이 경제부흥으로 이어졌다는 증거이다. 그 이후로 매년 한국 교회는 20%씩 성장하여 1980년 초에는 한국 교회 신자가 1,000만 명으로 성장했다.
마치 18세기 런던의 요한 웨슬레가 경건과 기도와 구제훈련을 했던 것에 대해 교회사가들이 “홀리클럽은 불란서 혁명 같은 유혈 혁명을 미연에 방지했다”고 평가한 것처럼 엑스플로 ’74는 ‘예수혁명’, ‘성령충만’, ‘성민 코리아’의 기치를 걸고 전교회가 전복음을 전민족에게 전하고자 하는 전복음운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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