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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곤 목사 '성시화운동의 철학과 비전'(7)
이름 WHCM 작성일 12-08-03 15:41 조회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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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성시화운동의 액션 포인트 (Action Points)
성시화운동은 원칙적으로는 홍보해서 자원하는 교회를 중심으로 한다. 무슨 힘이든지 힘이란 합할수록 커지고 쓸수록 강해진다. 전쟁 시에 개인들의 격투보다 총력전을 펼치면 더욱 이길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작은 개인 돈을 모아서 은행이나 주식회사를 만들면 수십 배로 이윤이 돌아온다. 밀도와 습도를 가하면 블랙홀이 되고 태풍의 눈처럼 작은 것이 반경 1,000km의 영향권을 형성하게 된다.
 
또 그대로 두면 쓸모없는 우라늄 원광석을 과학기술로 농축시키면 핵 발전 활성 에네르기로 변환시킬 수 있다. 만일 한 도시의 1천 교회의 남녀노소 다 나와 안드레처럼 불신자들을 데려와서 빌리 그레함 전도집회처럼 결신시키고 기도의 힘을 모아 성령의 용광로를 만들면 참석자들마다 성령의 능력의 세례를 받을 것이다. 수십만이 모여 찬송하며 예수행진만 해도 여리고 성이 무너지듯 사단의 세력들이 무너질 것이다. 역사의 분수령과 이정표가 되고 AD와 BC로 나눠지는 역사의 분기점이 될 것이다. 닫힌 문들이 기도로 열릴 것이다. 예수의 지진이 일어나고 화산이 폭발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계절이 올 것이다. 기도, 믿음, 사랑의 힘을 모아야 한다. 블랙홀 같은 인력을 만들어야 하고, 불신자가 교회를 친정집처럼 의지하게 해야 한다. 미국인들에게도 신앙부흥, 성시화의 바람이 불게 해야 한다. 
▲ 사진은 2006년 2월 영락교회에서 열린 서울 성시화운동 헌신예배 전 거리전도캠페인 모습    © 한국성시화운동신문
 

 
예수님은 만유의 주, 만왕의 왕이시다. 그의 구원은 전인적이고 우주적이다. 모든 권세가 주님께 있다고 했다. 주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딤전 2:5; 벧후 3:9). 바다는 넓고 고기는 무한하다. 교인 100인 미만의 미자립 교회가 한국교회의 80%라고 한다.
 
이제 신 개념, 신 사고, 창조적 사고, 초자연 사고, 성서적 사고를 할 때가 왔다. 힘을 합해서 전도해야 한다. 연합 목회를 해야 한다. 도시 하나가 완전 복음화 되는 꿈과 환상을 갖고 기도하자. 성시화운동본부의 임원을 세우는 일은 투표나 선거로 하지 않고 그 지역의 제일 큰 교회를 중심으로 상임대표와 3~4명의 공동대표를 추대·임명할 것이다.
 
그리고 여성, 기도, 의료, 신학분과 등 여러 분과위를 조직할 것이다. 이를 통해 인포메이션 뱅크와 리소스 뱅크를 만들 것이다. 모두가 기도의 불씨가 되어야 한다. 성령보다 기도보다 앞서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전 교회가 참여해야 한다. Togetherness가 화두가 되어야 한다. 기도의 불씨로 성령의 용광로를 만들어야 한다. 전도대회에 오는 사람마다 성령충만을 받고 돌아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최소한 100개 교회는 배가 할 수 있는 중점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도시마다 자원하는 교회들로 성시화운동은 실시된다. 기성 교회단체나 조직이 아닌 자원하는 교회나 개인들이 한다. 운동체는 그 도시에서 교인 수 기준으로 크기 순위 5대 교회 중(A,B,C,D,E) 가장 큰 A교회 목회자가 대표대회장을 맡고 그 다음 순위교회 목회자들이 공동회장을 맡는다. 참여를 사양하면 다음 순위로 내려간다. 운동 본부장은 목사나 장로 중 역동적이며 추진력이 있는 사람 중 사명감이 투철하고 인화적이며 칭찬받는 분들 중에 본인이 하고자 하는 분을 각도시의 공동회장단의 추천으로 임명되기도 한다.
 
성시화운동의 연속성과 역동성을 살리고 소모적인 한국적 폐해를 피하기 위해(속칭 감투) 본부 및 지역 본부장과 회장들은 투표해서 세우지 않고 임명제로 당분간 운영해 보겠다. 성시화운동의 재정은 대표회장과 공동회장들이 교회선교예산을 편성해서 많이 축복 받은 교회가 작은 교회들을 도와주는 성의로 부담하고 참가 교회들도 자원 재정헌금에 동참한다.
 
1. 전도 및 제자화 훈련
도시마다 자원하는 교회들은 전도요원훈련을 받고 그 요원들이 개교회 교인들에게 전수 훈련을 한다(딤후 2:2). Explo ’74 이전에 300개 교회를 선정해서 전도훈련을 시켰더니 예외 없이 배가 했다.
 
 2. 도시마다 자체 자율적 프로젝트 추진
 도시마다 참여 교회들이 자체 프로젝트를 할 때는 참여 교회들 합의로 자율 추진할 수 있다. 지역도시에서 교시(敎市)협의, 교동협의(교회와 동단위협력), 교학협의(아이 안심하고 학교 보내는 운동), 교경협의, 기타 사회복지운동 등 나눔과 섬김 운동(구제와 봉사) 본부장이 필요한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모든 운동은 자원봉사로 하며, 본부와 도시단위 성시화 가정사역을 전개한다.
 
3. 도시단위의 성시화대회
도시단위 성시화대회는 격년 혹은 매년 도시별로 개최 할 때는 3일간으로 하되 첫날은 안드레 운동으로 데려온 구도자들을 위한 전도 성회로 하고 둘째 날은 청소년의 밤으로 셋째 날은 전교인이 모이는 헌신의 밤으로 네 가지 약속과 헌신 1. 절대신앙 2. 절대헌신 3. 절대훈련 4. 선교헌신과 절대행동을 서약한다. 특히 ‘나도 한사람’전도서약으로 2010년까지 교회마다 절대배가 운동을 행동할 것을 서약한다.



11. 성시화운동 5~10년 목표
성시화운동은 2010년까지 전교인이 나도 한사람 전도해서 교회가 절대배가하도록 전도운동을 전개한다. 이를 위해 전도와 제자훈련의 표준모델을 제시할 것이다.
 
이를 위해 교회 내 제자화, 전도인화 운동에 C.C.C. 순운동과 NLTC 훈련을 원하면 C.C.C.가 협조할 수 있다. C.C.C. 전도와 제자훈련은 국내외적으로 유용하고 효율적인 전도훈련이다. 울산교회(정근두 목사)를 비롯한 울산지역 교회들과 전국의 교회들에서 지속적으로 전도훈련과 제자훈련을 실시해오고 있다.
 
성시화운동은 2015년까지 10만 명의 대학생 자비량 선교사를 포함한 모든 방법으로 10만명 장기 단기 선교사의 도전을 실현하고자 한다. 특히 ‘한 손에는 복음을, 한 손에는 사랑을’ 전하는 쌍손 선교의 모델을 만들어갈 것이다. 각 지역별 성시화운동은 지역별 특성에 맞게 유연성 있게 적용하되 성시화운동의 틀과 목적과 전략을 그대로 지켜 주기를 바랍니다.
 
성시화운동의 틀과 전략은 법적인 지적소유권보다 더 존중해 주기를 바랍니다. 12. 교회사에 나타난 성시화운동의 사례
 
1. 존 칼빈의 제네바 성시(聖市) 모델
1530년대, 종교 개혁자 칼빈은 20여 년간 제네바에서 성경이 시민 생활의 전 영역에 신앙과 행위의 표준이 되고, 예수님의 주권과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이 사회적으로 실천될 것을 목표로 200인으로 구성된 시의회(市議會)를 자문했고, 시민생활 훈육교본까지 만들었다.
 
칼빈 연구의 가장 권위있는 학자 E. William Monter의 글에도 잘 나타나 있듯이, 칼빈 시대의 제네바는 확실히 신정정치였다. 이는 제네바가 성직자에 의해서 통치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제네바가 이론적으로는 영적 권력(목사회)과 세속 권력(시당국)의 균형 잡힌 제휴와 협조를 통해서 하나님에 의해서 통치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제네바 공화국 내의 권력구조는 25인으로 구성된, 오늘날로 말하면 내각의 국무위원들로서 국무 전반을 집행, 관리하는 행정 기관이고 오늘날의 국회에 해당하는 200인회가 있었다. 200인회의 의원들은 시민을 대표하며, 25인의 행정관들은 200인회가 선출했다. 25인의 행정관들이나 200인 회원들은 선량하고 소박한 자영업자들이었고, 자원봉사자들이었다. 제네바는 유럽 각지에서 청교도적 신앙인들의 신앙적 정치적 망명도시이기도 했다.
 
칼빈의 제네바 개혁은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의 토양과 밑거름이 되었으며, 모든 영역의 발전에 영적, 도덕적 활력소가 되었다. 칼빈은 시민 훈육교과서를 만들고 어린이들을 위한 요리문답도 만들었다.
 
그 문답서의 첫 문답은 문- 인생의 주목적은 무엇인가? 답- 하나님을 아는 일이다. 문- 그 뜻은 무엇인가? 답-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였고, 생명의 원천이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를 창조하였기 때문이다.
 
문- 인간의 최고의 선은 무엇입니까?
 답-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다(의역).
 
칼빈의 제네바 성시의 바탕이 되는 모토는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예수(Sola Cristos)다. 즉, 개혁신앙에 기초한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개혁가 잔 낙스는 “칼빈의 도시 제네바는 말씀의 도시, 신성한 도시”(잔 낙스), “하나님이 유일한 군주인 도시, 낙원의 색채가 있는 도시”(잔 다고), “제네바의 선(善)의 원인은 인간보다 하나님을 제일로 믿는 겸허한 자세다.”(잔 바라루)라고 평했다. 칼빈은 최대의 성서학자이며, 조직신학자(전 성서주석과 『기독교강요』의 저자), 장로교회와 청교도의 원조이며, 영국 청교도 혁명과 미국 건국 정신의 원천인 청교도들의 원조이기도 하다.
 
칼빈은 성(聖)과 속(俗)의 개념을 바꿨다. 예수님의 주권 강조와 관련해서 성당이나 수도원만 거룩한 것이 아니다. 경건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남편을 내조하고, 자녀를 양육하는 일상의 현장이 성직의 장이며, 우리가 가진 모든 재능이나 소유가 하나님의 영광과 주 예수의 주권과 영광을 위해 쓰라고 주신 것이니, 우리는 그 충성된 청지기이어야 한다.
 
2. 해룬후트의 형제들 운동
 1730년대에 독일의 해룬후트에서 니콜라우스 진챈돌프(NIKOLAUS ZINDORF 1700~60) 주도하에 일어났던 교회사적 부흥의 역사 중 가장 재조명 해 볼만한 사건이 있다.
 
 진젠돌프는 영국 정부를 위한 고문관이 된 지 1년 만인 1722년에 베르센돌프에 소유지를 마련했다. 목수들 중의 한 명인 크리스천 데이비드가 핍박받은 모라비안 그리스도인 두 가정을 이곳으로 데려온 것을 시작으로 7년 동안 진챈돌프는 약 300명의 사람들의 피난처로 그의 소유지를 제공했다. 점점 불어난 이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는 ‘주님의 피난처’인 헤룬후트(Hemhut)마을을 형성했다.
 
진젠돌프는 서로 친밀하게 교통할 수 있도록 ‘작은 소그룹’들로 조직화 시켰다. 그는 또한 매일 집회를 열었다. 그 집회에는 찬양집회와 애찬이 포함되어 있었다. 성서적으로 역사적으로 모든 시대의 부흥운동의 배후에는 기도운동이 있었다.
 
스코틀렌드 부흥의 배후에는 존 낙스의 “스코틀렌드를 주옵소서! 아니면 죽음을 주옵소서”라는 결사적 기도가 있었다. 1904년 웨일스(Wales)의 부흥의 기폭점은 이반로볼이라는 광산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기도운동이었다. 20~30명의 청년들은 아사만 면할 정도로 음식을 취하는 금식으로 주야로 연쇄기도를 했다. 오순절 때처럼 “나는 어찌할꼬!”하는 두려움에서 회개하는 사람들로 줄을 이었다.
 
켐벨몰겐의 보고서에는 감옥도 술집도 비고 교회만 꽉 찼다고 기록되어 있다. 말사스티 조선소에는 2만 명의 노동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자신의 죄를 회개한 후 훔쳐간 공구들을 반환했는데 그 양이 거의 창고를 지을 만했다. 이때는 지하갱도 속에서도 찬송을 들을 수 있었다.
 
3. 존 낙스의 스코틀랜드 부흥운동
성서적으로 역사적으로 모든 시대의 부흥운동의 배후에는 기도운동이 있었다. 스코틀랜드의 부흥의 배후에는 존 낙스(John Knox, ca. 1514~1572)의 “스코틀랜드를 주옵소서! 아니면 죽음을 주옵소서!”라는 결사적 기도가 있었다. 존 낙스는 생애 마지막 13년을 스코틀랜드 개혁신앙의 강화를 위해 혼신을 다했고, 그에게는 우상숭배나 다름없던 로마 카톨릭의 잔재를 일소하기 위해 투쟁했다.
 
4. 웨일스 부흥운동
1904년 웨일스(Wales)의 부흥의 기폭점은 이반 로버츠라는 광산노동자 중심으로 20~30명의 청년들이 모여서 아사만 면할 정도로 음식을 취하는 금식으로 주야로 연속기도를 했다. 사람들은 오순절 때처럼 “나는 어찌할꼬!”하는 두려움에서 회개하는 사람들로 줄을 이었다. 켐볼몰겐의 보고에 감옥도 술집도 비었다. 교회만 꽉 찼다. 그 결과 수만 명이 중생(重生)을 하고 술집, 도박장, 극장, 당구장, 경마장, 창녀들, 도둑들이 자취를 감추고, 조선소의 직공들이 훔친 것들을 되돌려 주었는데 그 물건들을 쌓아둘 큰 창고를 지을 정도로 양이 많았다. 경찰은 할 일이 없어지고 말았다. 성령 충만한 광부들은 지하 갱도에서 점심 먹는 것을 잊고 성경을 공부하였으며, 전차 안에서도 사람마다 성경을 읽는 광경이 이목을 끌었다.
 
5. 해룬후트의 모라비안 형제단 1730년대의 구라파는 종교개혁으로 신구교간 뿐 아니라 종파간 분파와 갈등이 도처에 종교전쟁으로까지 이어져서 사람들은 종교피난처를 찾아다닐 형국이었다. 해룬후트의 진챈돌프는 24인의 남자와 24인의 여자로 구성된 24시간 연쇄기도회를 시작했다. 이 기도회는 100년간 계속됐다. 보헤미아와 보라비아에서도 카톨릭 박해를 피해서 모아왔다. 사람들은 성령과 기도와 말씀으로 충만했다.
 
요한웨슬레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런던의 모라비안 형제단이었고 월리암 케리에게도 런던의 모라비안 형제들이 최대의 영향을 주었다. 잔 뉴톤과 클라팜 교구의 부흥의 원류도 해룬후트의 모라비안 형제단이었다. 역사가 매콜리는 “웨슬레의 홀리클럽운동이 없었으면 영국은 불란서보다 더 혹독한 유혈혁명이 일어났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교회마다 전도를, 사람마다 복음을, 나도 한사람’ ‘전 교회가 전 복음을 전 시민에게’ 민족의 가슴마다 피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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